사랑을 남기고 떠난 노무라 할아버지
1970년대 청계천 빈민을 품에 보듬은 사람, 일제가 식민 지배 당시 벌였던 만행을 속죄하고자 평화의 소녀상 앞에 무릎 꿇은 일본인, 장애어린이와 그 부모의 손을 잡고 눈물 흘린 작은 체구의 할아버지….
오랜 시간 푸르메재단의 기부자로, 친구로 따뜻한 웃음을 보내주었던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 씨가 지난 7월 26일 94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노무라 씨는 악성 림프종이 발병해 6월부터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고 노무라 모토유키 씨는 악성 림프종이 발병해 지난 6월부터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함께 입원했던 부인 요리코 여사와 찍은 마지막 모습. (사진=아들 마코토 씨 제공)
노무라 씨는 청계천 빈민 구호활동을 펼치는 등 반평생을 한국에 대한 봉사로 보냈습니다. 1958년 처음 한국에 와서 일제의 식민 지배 잔재와 6·25전쟁의 후유증을 목격한 그는 반성과 속죄의 마음을 안고 1973년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이때 청계천 빈민가의 참상을 목격하고 어머니가 물려준 도쿄의 자택까지 팔아 고 제정구 전 의원과 함께 빈민 구호에 나섰지요. 일본은 물론 독일, 뉴질랜드 등에도 지원을 호소해 탁아시설이 건립되도록 힘썼습니다. 당시 노무라 씨가 청계천 빈민을 위해 지원한 돈은 7,500만 엔에 달합니다. 1980년이 돼서야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이 '100만 원'을 겨우 돌파한 점을 감안하면, 당시의 7,500만 엔은 지금 화폐가치로는 상상하기 힘든 큰 금액입니다(2024년 1인당 국민총소득 5,012만 원).
▲고 제정구 전 의원과 청계천 빈민구호 활동을 하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 노무라 모토유키 씨
구호 활동과 함께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청계천과 동대문시장, 구로공단을 비롯해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남긴 사진 자료 약 2만 점을 지난 2006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지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 명예시민에 선정됐습니다. 노무라 씨는 “1970년대 어려운 시절에 몰래 찍어둔 사진을 한국인들에게 돌려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노무라 씨가 1975년 촬영한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과 청계천 모습
고인이 한 일은 빈민구호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사과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2012년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무릎 꿇고 일본의 과거사를 속죄한 후에는 일본 우익 세력으로부터 여러 차례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노무라 씨의 한국 사랑은 장애어린이에 대한 사랑으로도 이어졌습니다. 2009년 동화작가 임정진 씨의 소개로 알게 된 푸르메재단을 매년 방문해 장애어린이와 그 가족을 만나 위로했으며, 생활비를 아껴 모은 돈을 기부해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의 건립을 도왔습니다. 어린이재활병원이 첫 삽을 뜰 때는 “환한 빛으로 이끄는 북극성처럼 장애어린이가 희망의 길로 인도되길 기대한다”며 축하했고, 완공된 모습을 보고는 ‘기적’이라고 감탄하며 병원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았지요. 평생 국적과 세대를 초월해 박애정신을 실천해 온 노무라 씨는 2015년 제정된 ‘제1회 아시아 필란트로피 어워드(APA)’를 수상했습니다.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기부벽에서 가족의 이름을 찾은 노무라 모토유키 씨 부부.
그 사랑은 대를 이어 아들 마코토 씨 부부에게로 전해졌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마코토 씨와 치과 코디네이터인 며느리 미나 씨는 휴가를 반납해 중증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치과치료 봉사를 하고 칫솔을 자비로 제작해 보내옵니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10만 엔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마코토 씨는 “아버지는 수입이 줄어든 노후에도 조금씩 저축해 기부를 계속했다”며 “스스로를 낮추면서 성경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복음 7-13)’는 말을 날마다 실천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돈이나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조용히 보내달라’던 노무라 씨의 뜻에 따라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습니다.
▲(왼쪽부터) 고 노무라 모토유키 씨, 부인 요리코 여사, 며느리 미나 씨, 아들 마코토 씨
마지막 소원을 묻는 말에 “아들 마코토가 한국 장애어린이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며 환하게 웃던 노무라 모토유키 씨. 그가 한국 사회에 남긴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이 더 큰 희망으로 자랄 수 있도록 잘 지켜가겠습니다.
글=오선영 부장(마케팅팀)
사진=푸르메재단, 마코토 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