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채용 시장의 봄을 꿈꾸다
코스콤 장애인 IT 창업아이템 공모전 1기 우수팀 잡빌리티 인터뷰
용산의 한 사무실. 봄볕이 스며드는 따뜻한 공간에서 두 청년을 만났습니다.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장애인 취업 분야에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들, 장애인 전용 채용 플랫폼 ‘잡빌리티’의 신현우 대표(CEO), 김성현 최고기술책임자(CTO)입니다. 이들은 잡빌리티를 통해 장애인 일자리의 문을 열고,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닿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성현 CTO(사진 왼쪽)와 신현우 CEO
잡빌리티, 그 시작
잡빌리티는 두 청년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습니다. 신 CEO는 시각장애인이 된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고 단순노동 외에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업무 지식도 경험도 그대로였지만, 시력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직무를 바꿔야 했어요. 장애인이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는 일자리를 제안받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김 CTO는 청각장애인으로서 취업 장벽을 직접 겪었습니다. IT 개발자를 꿈꿨지만 장애인 전형에는 원하는 직무가 없었습니다. 결국 일반전형에 도전해 입사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어요. 저는 입 모양을 보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데, 마스크를 쓴 회의는 정말 버겁더라고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회사에 배려를 요청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만약 합격자가 제가 아니었다면, 회사는 그런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요.”
장애인 관련 모임에서 만나 친해진 두 청년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장애인 취업의 어려움에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해 보기로 의기투합했지요. ‘능력 있는 장애인들이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그렇게 잡빌리티가 시작됐습니다.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다
2023년 잡빌리티는 푸르메재단과 코스콤이 함께한 ‘장애인 IT 창업 아이템 공모전’에 당선되며 도약의 계기를 맞았습니다. 당시 두 청년의 고민은 사업을 운영할 자금과 인프라, 네트워크였습니다. 공모전 당선은 이런 고민을 해결할 기회였지요. 사업지원금으로 플랫폼의 주요 오류를 개선했고, 마케팅과 채용 연계 활동도 본격화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업 전문가들의 실무 중심 멘토링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소풍커넥트 최경희 대표님의 조언이에요. 국내 사업만 생각하던 저희에게 해외 진출 가능성을 짚어주셨죠. 덕분에 베트남 진출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소풍커넥트 최경희 대표에게 멘토링을 받는 잡빌리티 팀
잡빌리티는 이제 국내를 넘어 글로벌 무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에서 장애인 채용 플랫폼의 필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신 CEO는 “베트남은 전체 인구의 7%(약 700만 명)가 장애인이지만, 공식적인 채용 플랫폼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라며 “대부분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채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CTO는 제조업 중심인 베트남에서는 장애인 인력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 실제로 필요한 곳이라는 걸 직접 확인했어요. 단 한국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닌, 현지 상황에 맞춰 조율해 가는 게 중요하지요. 잡빌리티의 기술과 경험을 현지에 잘 적용한다면, 분명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현재 잡빌리티는 KOICA(한국국제개발협력단)의 ‘이노포트’(개발협력을 위한 혁신 허브)와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해 본격적인 베트남 진출을 준비 중입니다.
잡빌리티가 바라는 미래
채용 플랫폼 ‘잡빌리티’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일정 비율로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기업은 고용부담금을 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해 장애인을 ‘형식적으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내 채용 플랫폼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기업 중심의 매칭에 집중합니다. 채용의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의무 이행’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잡빌리티는 장애인을 위한 '사람 중심의 채용 플랫폼'을 지향합니다. 단순히 이력서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장애인의 특성과 직무 역량을 함께 고려해 적합한 인재를 선별합니다. 특히 ‘3인 추천 시스템’은 잡빌리티만의 차별화된 방식입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정보를 받고, 보유한 장애인 인재풀에서 그에 부합하는 3인을 선별해 추천하는 이 방식은 기업에는 검증된 인재를 효율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장애인 구직자에게는 자신의 특성과 강점이 반영된 채용 과정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업으로부터 휠체어 접근성, 장애인 화장실 유무 등 근무지 편의시설 데이터를 받아, 이를 픽토그램 형태로 제공합니다. 기존 채용공고에서는 이런 정보가 거의 드러나지 않아 장애인 구직자들이 일일이 문의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두 청년은 더 나아가 잡빌리티를 흩어진 장애인 커뮤니티를 하나로 연결하고, 채용과 복지 정보, 커뮤니티 기능까지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김 CTO는 말합니다. “대학 시절, 말투가 어눌하단 이유로 저를 외국인으로 착각한 친구도 있었어요. 그만큼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만날 기회조차 주지 않았죠. 그래서 우리는 더 나서야 해요. 사회에 나가 존재를 보여줘야 합니다.”
신 CEO는 해외 기업을 방문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다양한 인종,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기업이었습니다. 모든 직원이 서로를 배려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매뉴얼을 갖췄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배려’를 눈치나 센스에 맡기지 않고, 누구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고 있었죠. 우리도 그런 문화를 한국에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인터뷰 말미,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신 CEO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정말 뛰어난 역량을 지닌 장애인을 많이 만났습니다. 단지 한정적인 채용 시장을 보고 스스로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김 CTO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겁내지 마세요.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빨리 실패해 보는 게 더 나을 수 있어요. 도움이 필요할 땐 주저 말고 여러 곳을 두드려보세요. 아무 데서도 응답이 없다면, 저희를 찾아오세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잡빌리티의 로고는 ‘개구리’입니다.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가 힘차게 도약하듯, 오랫동안 멈춰 있던 장애인 채용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잡빌리티는 오늘도 장애인과 기업을 연결하고,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습니다. 잡빌리티가 열어갈 장애인 채용의 봄,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글, 사진= 임하리 사원 (마케팅팀)
*영상= 김홍선 차장(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