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영어마을은 많은데 왜 재활마을은 없는가

4월의 하늘은 눈부십니다. 연두의 신록이 며칠새 초록으로 변하면서 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푸르메재단과 한겨레신문은 4월 장애인의 달을 맞아 장애환자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이들에게 재활의 희망을 주기위해 <재활의 희망을 함께 나눠요> 공동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캠페인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려움이 있는지, 정말 장애인이 함께 사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27일 오전 10시 30분 한겨레신문 8층 회의실에서 긴급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이날 좌담회는 푸르메재단 대표인 강지원 변호사의 사회로, 재활의학과 전문의 출신인 박창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원장, 2006년 장애극복상을 수상한 연기인 박대운씨, 방송 MC로 활동하고 있는 김진희 절단장애인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 강지원=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었지만 앞으로 365일 장애인의 날이 됐으면 좋겠다. 주위를 둘러보면 외형적으론 건강하지만 정신적인 장애를 겪는 분들이 많고 오히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닐까한다.


▼김진희=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고 난 뒤 절단수술을 받았지만 의족을 착용하고 남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싶다. 후천적인 장애는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어느 날부터 장애인이 됐기 때문에 적응하고 살아가기가 더 힘든 것 같다. 지하철을 타더라도 의족을 입고 힘들기 때문에 장애노인석에 앉아 있으면 “젊은 사람이 건방지다”는 말을 듣는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앉아 있다”고 하면 “장애인이 왜 나돌아 다니냐, 장애인이 자랑이냐” 등등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날 선 말 때문에 모르는 사이 위축된다. 특히 여성장애인은 이중적인 차별을 받는다. 주위에서 “결혼은 무슨 결혼이냐, 애는 낳을 수 있겠느냐”고 묻곤 한다. 여성장애인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에 사회생활하기 쉽지 않다.


▼박대운=6살 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했기 때문에 선천성 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인들에게 가장 심각한 것이 교육문제다. 학교에 장애인 시설이 안되어있기 때문에 힘들고 장애를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적인 문제로 여긴다. 불편을 장애인이 감수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학교에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거절해서 어머니가 교육청과 시청, 구청 등을 찾아다니며 싸움 끝에 3개월간 학교생활한 뒤 성적이 떨어지면 자퇴한다는 조건으로 입학을 했다. 학교에서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이 없어 하루에 1번 화장실을 가는 훈련을 했고 심지어 화장실을 가기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을 다녀오곤 했다. 어린나이에 사회적인 벽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됐는데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낀 것은 장애인에게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 강지원=아직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도 따갑고 벽도 높은 것 같다. 장애인이 갖는 심리적인 고통은 비장애인들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밤을 새워서 울어본 경험이 있는가.


▼김진희=의족을 처음 착용하고 재활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어머니를 붙잡고 걷는 연습을 했다. 걷는 것이 다르다는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버스에 타면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에 어렵다. 이후 택시를 타게 됐다. 여전히 높은 벽을 느낀다.


▼박대운=내가 학교에 다닐 때 전교에 장애인이 나 혼자였다. 쉬는 시간에 나를 구경하기 위해 전교생이 몰려왔다. 어린나이에 누가 자신을 쳐다본다는 것, 그것도 결코 좋은 시선이 아니라면 상처를 받게 된다. 선생님이 장애학생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 없으면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하루는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나갔더니 선생님이 “왜 나왔느냐,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야단을 친 적이 있다. 결국 누구도 나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오도 다케를 위해 특별히 컬리 큐럼을 만들고 소풍도 산을 오르는 것이 평지를 찾아 가는 등 장애인을 배려하는데 우리는 배제시키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어린 나이에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했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사회



  • 강지원=장애인들에게 단순한 차원에서 시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다방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의료와 복지, 스포츠, 직업 등을 함께해서 재활기회를 일거리와 연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박창일=사고 치료가 끝나면 이때부터 재활이 필요하다. 사회복귀가 되어야 치료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의족을 하면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재활치료를 받을 수 기회는 적다. 의족을 하고도 걷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가. 이것은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90%이상이 중도장애인이고 장애를 가지게 되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이 의료재활이다. 지금도 재활전문병원에 입원하려면 2~3달은 기다려야 하고 2달이 되면 퇴원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시스템이 해결 안되면 장애인들이 재활치료를 받을 수 없다. 우선 전국적으로 재활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어렵다. 적자고 운영하기도 힘드니까 누구도 재활병원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인력도 부족하다.



  • 강지원=우리나라에 의료재활이 필요한 장애인이 얼마나 되나.


▼박창일=WHO에서 우리나라에 약 480~500만 장애인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중 약 40%는 의료재활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최소한 50만명은 재활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 강지원=이들을 수용할 있는 재활병원은 얼마나 있나.


▼박창일=대학에서 운영하는 재활병원으로는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이 유일하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의료원, 그리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삼육재활원과 서울재활병원 등이 있고 모두 합해서 약 600병상에 불과하다.



  • 강지원=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재활치료를 받았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을 이야기해 달라.


▼김진희=9년전 교통사고로 왼쩍 발목이 절단되고 팔과 얼굴이 크게 다쳐서 여기저기 병원을 돌아다닌 끝에 결국 6일 만에 다시 처음 수술한 병원으로 되돌아와 재활치료를 받았다. 재활치료 경험이 있는 병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환자에게는 합병증이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일단 퇴원하면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가 치료받기 힘들다. 우선 병원의 문턱이 높고 치료를 받으려 해도 하루를 소비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 장애환자에게는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박창일=그래서 재활전문병원이 필요하다. 일반병원에서는 장애인을 관리하기도 힘들고 치료하기도 어렵다.


▼박대운=30년 전 교통사고로 다쳤을 때 대구 영남대병원을 찾았다. 그때는 재활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재활의학과도 없었다. 당장 절단수술을 받으면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때 만약 의족을 착용했더라면 지금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지금 걸으려 해도 근육이 모두 굳었고 휠체어를 타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걸을 수가 없게 됐다. 재활이란 개념도 10년 전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들었고 재활치료의 혜택과 서울과 지방이 차이가 난다.


재활혜택도 서울과 지방의 차이



  • 강지원=의족을 착용하고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박대운씨도 걸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때를 놓치지 않는 재활치료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재활병원이 획기적으로 세워져야 하는데.


▼김진희=무엇보다 제대로 된 재활병원이 세워져야 한다. 수도권에 사회복지관은 많지만 대부분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고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하려면 보통 2~3달은 기다려야한다. 장애인을 위한 병원이 하나라도 있어서 장애인을 죽을 때까지 돌봐주고 관리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창일=제대로 된 병원이 최소한 권역별로 하나씩 있어야 한다. 전국 어디서나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42개 대학병원이 있지만 이중 재활병원은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재활병원이 유일하다. 왜 이런가. 국가에서 이런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뒤받침을 해줘야 한다. 국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도 될까 말까한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 강지원=말씀을 들으니까 특히 지방에 있는 장애인이 더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재활병원이 적자를 내는 것이 문제이고 이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박창일= 재활병원에는 여러 팀이 있어야 한다.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심리치료사, 보조기구기사 등 여러 직종이 필요하다. 재활병원 경비는 인건비가 대부분인데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절실하다. 최근 암환자에게 개인이 10%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가가 부담하는 암보험이 실시되고 있는데 장애인의 경우에도 치료를 전적으로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낮은 의료수가가 현실화돼야 재활병원도 세워지고 장애인이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 강지원=장애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박대운=장애인은 치료를 받아야 하고 보호를 받는 것이 관건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인 치료를 휘발유세나 도로세 등으로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과 같이 장애인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진희=사고 전에 미술학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단독건물을 지어서 규모가 큰 미술학원을 경영하는 것이 꿈이었다. 사고후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것이 참 많다. 하지만 장애인이 늘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장애인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러려면 직업재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장애인 개개인의 능력을 파악해서 개발해야 하지만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나는 앞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가교역할을 하는 방송인이 되고 싶다. 장애인 중에서 스타가 나와서 장애인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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