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한 40년 외길
장애인과 함께한 40년 외길,
곽재복 관장을 만나다
1985년 5월, 경제학과를 갓 졸업한 스물여섯 살 청년이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서울장복’)의 문을 두드렸다. 88올림픽도 아직 열리지 않았던 시절, 모두가 경제발전에만 목매던 당시에는 ‘장애’, ‘사회복지’란 단어도 생소했다. 서울장복은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그때 고작 개관 3년 차였다. ‘여기서 2년만 일하고 내게 맞는 길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들어간 첫 직장.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내디딘 첫발이 40년 가까이 이어지리라고….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이 그에게 꼭 맞는 길이었다. 장애인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이달 말 퇴임을 앞둔 곽재복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장을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가 만났다.
곽재복 관장(사진 왼쪽)과 백경학 상임대표
불모지였던 장애인복지 분야, 주춧돌부터 쌓아올리다
“대학 졸업할 무렵 무역회사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끌리지 않더라고요. 마침 제가 속한 가톨릭학생회에서 성서를 지도해주시던 수녀님께서 ‘상경계열 출신을 찾는 복지관이 있다’고 추천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기도 했던 터라, 복지관에서 기획‧홍보 일을 맡게 됐습니다.”
입사하자마자 곽 관장은 막막했다. 장애인복지 분야에서 홍보 업무를 맡은 사람은 전무할 정도로 홍보는 낯선 영역이었다. 장애인을 둘러싼 열악한 환경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려고 해도 관심 갖는 사람이 없었다. “장애인 무료 순회 진료를 받기 위해 37년 만에 처음 집 밖에 나와본 장애인이 있을 정도였어요. 방송사에서도 장애인 관련 내용이 TV에 나오면 시청자가 불편해한다며 꺼렸고요. 지금은 이해되지 않지만, 그때는 그게 현실이었지요. 88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입사 초기인 1980년대 모습(제일 오른쪽이 곽재복 관장)
서울장복은 1982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장애인복지관이다. 재활치료 서비스와 커뮤니티 센터를 결합한 모델로,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 형태다. 장애 자녀의 교육과 치료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전봉윤 초대 기획실장 등이 상담, 치료, 교육, 직업훈련 등을 한곳에서 받을 수 있도록 구상했다.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보호하는 데만 주력하던 당시 상황에서 ‘지역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혁신적인 모델이었다. 이러한 특징을 토대로 서울장복은 이후 생겨난 260여 곳 장애인복지관의 지원과 자문 역할을 맡아왔다.
1980년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 진행한 장애인 무료순회진료 모습. 당시는 장애인을 장애자로 표기하던 때였다.
“80~90년대는 장애인복지 분야에 정말 아무것도 없던 암울한 때였습니다. 외국의 선진 기법을 배워서 우리 현실에 맞게 도입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어요. 그 경험과 노하우를 다른 복지관과 공유해 왔습니다. 세미나와 교육을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장애 자녀를 둔 부모와 사회복지 분야 종사자를 위한 100여 종의 교재를 펴냈지요. 복지관 운영에 필요한 행정체계 등을 보급하면서 국내 장애인복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역할은 앞으로도 서울장복이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위하는 한뜻으로 25년을 이어온 푸르메와의 인연
서울장복에서 일하는 동안 곽 관장은 ‘우리는 전문성을 가지고 이용자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겼다. 1996년 기획과장을 맡으면서 사회변화에 발맞춰 ‘전산화’, ‘고객 만족’, ‘직원의 전문성 향상’의 세 가지 목표를 정해 움직였다. 곽 관장은 직원들이 자신이 맡은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고 연구지를 지속적으로 발간하도록 지원해 장애인 이용자와 보호자의 만족도를 높였다.
2000년대 초반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직원 척사대회 때의 곽재복 관장 모습
서울장복과 곽재복 관장, 푸르메재단의 인연이 시작된 것도 이맘때였다. 1999년 백경학 상임대표와 부인 황혜경 씨는 유럽에서 재활치료를 받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재활치료를 이어갈 방법을 찾다가 우리나라의 열악한 재활환경을 알고, 장애인을 위한 재활병원을 짓기로 결심했다. 병원 건립을 위해 재단 설립을 준비하던 백 대표는 우선 우리나라에서 재활치료 잘하기로 소문난 기관을 찾았다. 그중 한곳이 서울장복이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복지관 입구에 도착했을 때 백 대표를 맞이한 이가 바로 곽 관장이었다고 한다. 백 대표는 “약속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간 저를 데리고 한 시간 넘게 복지관을 안내해주는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라며 “자신의 일과 직장을 이렇게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함께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인연으로 2011년 곽 관장은 푸르메재단이 운영하는 과천시장애인복지관의 초대 관장을 역임했고, 2018년 푸르메재단이 서울장복을 수탁하자 이곳으로 돌아와 6대 관장을 맡았다. 취임 후 그는 사람 중심 서비스, 지역사회 통합,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세계화’와 ‘지역화’를 합친 말)의 세 가지 전략을 설정, 지역사회 장애인의 삶을 바꾸는 데 일조해 왔다. 곽 관장은 “이용자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노력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국제협력에도 힘을 기울여 해외에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 모델을 알리고 있다. 그 성과로 서울장복을 모델로 한 베트남 꽝찌성 장애인종합재활센터가 내년 하반기에 문을 열 예정이다.
2018년 푸르메재단이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의 뒤를 이어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운영을 맡았을 때 모습(사진 왼쪽 곽재복 관장, 사진 오른쪽 백경학 상임대표).
장애인의 ‘보통의 삶’ 위해 필요한 우리의 노력은
곽 관장이 일한 40년간 장애인복지 분야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81년 처음으로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이 1989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장애인을 부르는 명칭이 바뀌었다. 1988년 장애인등록제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복지 서비스가 체계화됐다.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 1997년 편의증진보장법이 제정되면서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 참여를 강화하고 이동과 접근성을 보장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19년 장애등급제 폐지, 2021년 탈시설 자립지원 로드맵 발표 등이 이어지면서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개인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의 주체성이 발현됨에 따라 정책과 제도가 개선되고, 일선에서 곽 관장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노력한 덕분에 나타난 변화다.
백경학 상임대표는 앞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현안은 무엇인지 물었다. 곽 관장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장애인복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라고 했다. 대표적인 게 ▲저출생에 의한 인구 감소 ▲고령화 ▲1인 가구 ▲기후 위기 등이다. “인구 감소에 따라 양적 서비스에서 질적 서비스, 즉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복지관 이용자 중 어린이가 절반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고령자가 많아요. 무엇보다 1인 가구인 고령의 장애인이 늘고 있고요. 이 경우 여러 가지 문제를 복합적으로 겪기 때문에 이런 분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24년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이용자에게 꽃을 선물하는 곽재복 관장
특히 ‘탈시설’에 관련한 문제는 장애인복지 분야 종사자들이 가장 깊이 고민하는 문제다.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일터를 만들고 자립을 지원하는 푸르메재단에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내용이다. 백 대표는 “중증의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탈시설’은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 같습니다”라고 토로했다. 곽 관장도 이에 공감했다. 우리보다 먼저 탈시설을 시도한 일본에서도 시설을 나온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떠한 교류 없이 고립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시설을 나온 장애인이 고령이 되면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 다시 시설로 돌아오기도 했다. 곽 관장은 “단순히 사는 장소의 이동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장애인이 제일 편안하게 생활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핵심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장애인 시설도 변하고 있어요. 장애인 이용자의 욕구가 개별화됨에 따라 개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요. ‘탈시설’은 결국 이용자가 어떻게 지역사회 안에서 독립적으로 살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봐요. 시설에서 거주하더라도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울릴 수 있도록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죠. 두 가지 방향으로 모두 보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장애인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도 현재로서는 부족한 상황이고, 장애인이 독립하여 살 수 있는 주택 공급 문제도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퇴임을 앞두고 “평생 장애인과 함께하며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참 행운이었습니다”고 말하는 곽재복 관장. 현직에서는 물러나지만, 푸르메재단의 이사로서 앞으로도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계획이다. 인생 2막을 향해 새로운 출발선에 선 그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글=오선영 부장(마케팅팀)
*사진=오선영‧서울장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