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처음 내뱉은 말

하나금융나눔재단 재활치료비 지원사업 


 


엄마(가운데)와 환이(오른쪽), 환범이엄마(가운데)와 환이(오른쪽), 환범이


“아이에게 생애 처음으로 들은 말이 ‘김밥’이에요. 이제 ‘엄마, 가자’라는 두 마디만 들으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청각장애와 발달장애를 함께 가지고 태어난 유환이(20)·환범(15) 형제. 두 아이에게 ‘엄마’라고 불리고 싶은 김지윤(48) 씨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빛이 사라지다


“환이 생후 3개월, 우연히 산부인과의 책자에서 본 청각 테스트를 통해 아이의 장애를 알았어요. 불안한 마음에 환범이도 태어나자마자 검사를 했는데 귀 안쪽 모양이 환이와 똑같더군요. 참 막막하고 억울했죠. 전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작은아버지를 찾아가 엉엉 울었다는 얘기를 뒤늦게 전해 들었어요.”



첫째 환이 씨 때만 해도 엄마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장애 진단 시기가 빨랐고, 그만큼 인공와우 수술도 빨리 진행됐죠. 들을 수 있게 됐으니 말이 서너 달 늦은 정도는 곧 따라잡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발달장애가 함께 있다는 걸 뒤늦게 안 탓입니다.


“언어치료를 할 때 왜 우리 애들만 똑같은 단어들을 계속 반복하게 하는지 불만이었는데 그 이유를 뒤늦게 알았어요. 물통이 차야 물이 넘치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한 단어를 몇만 번 이상 차고 넘치게 들려줘야 비로소 말이 되어 나온다는 걸요.


홀로 생활비를 벌어 두 자녀를 키워야 하는 엄마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틈틈이 일해서 번 돈을 재활치료에 쏟아부었습니다. “신생아 때 인공와우 수술을 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재활치료를 중단한 적이 없어요. 이때껏 받아온 치료조차 의미가 없어질까 봐 두려웠거든요.”


절망 끝에서 다가온 손길


양육권의 절반을 가진 남편이 부양의무자로 올라가 있어 받을 수 있는 지원도 적은 데다가 양육비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엄마는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며 번 돈 150만 원으로 세 가족의 생활과 재활치료까지 해결해야 했습니다. 안 그래도 비싼 치료비는 매년 올라 치료 횟수를 점차 줄였습니다. 그만큼 엄마의 불안은 커져만 갔습니다. 어렵던 그해 2019년, 푸르메재단과 하나금융나눔재단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두 자녀 모두에게 재활치료비를 지원해준 것입니다. 그제야 엄마는 오랫동안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하지만 20년간 재활을 받은 환이 씨는 글까지 깨우쳤지만 언어 소통까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물통을 채우기에 조금 모자랐던 걸까요? 문제는 장애인 취업에 언어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학교를 다니며 임가공 업무 능력을 착실히 키워왔던 환이 씨는 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모든 면접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취업을 포기하고 장애인 주간활동을 신청해놓은 상태죠. 자녀들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길 바랐던 엄마의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하나금융나눔재단 재활치료비 지원으로 언어 재활치료를 받는 환범이하나금융나눔재단 재활치료비 지원으로 언어 재활치료를 받는 환범이


그러던 가족에게 올해 초, 작은 희망이 움텄습니다. 엄마 입 모양을 유심히 보던 환범이 입에서 ‘김밥’이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죠. 지금은 ‘햄버거’ ‘아빠’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더 늘었어요. 스스로도 자랑스러운지 학교 선생님을 오히려 가르친대요. 책을 읽게 하고 틀린 부분을 귀신같이 발견해서 다시 읽으라고 닦달하고요.(웃음)”


엄마에게는 더 큰 자랑입니다. 환범이에게 ‘햄버거’를 발음하게 한 후 “꽤 잘하죠?”라며 웃는 지윤 씨의 얼굴이 환하게 빛납니다.


다시, 빛


“‘엄마’라는 단어는 발음이 어려운지 아직 못 들어봤어요. 듣고 싶은 말이요? ‘엄마, 가자!’ 딱 두 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죠.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하는 지윤 씨. “어머니 자신을 위한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 웃음과 함께 “이번 생은 포기죠”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이들을 위해 살기만도 바쁘거든요. 요즘은 종종 행복해요. 어려울 때 손을 잡고 오랫동안 함께 걸어준 푸르메재단과 하나금융나눔재단 덕분인 것 같아서 고마워요.



그렇게 얘기하는 지윤 씨의 얼굴은 어둠이 걷히고 해가 막 떠오른 오전 8시경의 햇살 같습니다. 이제 막 움튼 희망이 엄마와 두 자녀에게 각각 뿌리를 내려 튼튼한 세 나무로 자라길 바랍니다. 


*글, 사진= 지화정 과장 (마케팅팀)


 


장애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손을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