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어요"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심리상담비 지원사업 인터뷰


 


“내 아이가 희귀난치 질환이고,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때 제 마음이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라고 생각했죠.


“감기처럼 낫는 병인 줄 알았어요”


뇌전증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던 수빈이 어린시절뇌전증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던 수빈이 어린시절. 이선희 씨 제공.


자유를 찾아 떠난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된 이선희 씨(가명).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낳은 아이는 다행히 발육상태도 좋고 건강했습니다. 때가 되도 뒤집지 않고 기려고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의문이 들었지만, 영유아 검사에서도 조금 느릴 뿐이라고 하니 안심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생후 10개월에 장염으로 찾은 소아과에서 의사가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수빈이(가명)는 희귀난치성 질환인 ‘레녹스가스토증후군’* 진단을 받았습니다. 


※레녹스가스토증후군: 소아기에 발생하는 가장 심한 형태의 뇌전증으로 여러 형태의 경련과 발달 지연 등의 증상을 보이며 인지기능 및 지적장애를 동반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감기처럼 치료하면 낫는 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온라인에서 심각한 아이들의 사진과 평생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희망 없는 결과들을 보면서 시설을 보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어요.”


당시 선희 씨의 상황도 더할 수 없이 나빴습니다. 갑작스러운 출산으로 지낼 곳이 없어 할머니 댁에 몸을 의탁한 상황인데다 벌이도 없었습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다는 것도 몰랐죠. 하지만 도저히 아이를 시설에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선희 씨는 종일 수빈이의 재활치료에 매달렸습니다. 2년은 병원에 상주하며 치료받고, 다음 2년은 아침에 와서 6시간 치료받는 낮병동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같은 처지의 엄마들과 서로를 위로하며, 느리지만 꾸준한 수빈이의 성장을 보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수빈이는 예후가 좋은 편이었어요. 치료를 시작하고 몇 달 만에 걷기 시작했죠. 어려운 순간마다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을 비롯한 많은 분이 치료비를 지원해준 덕분에 중단 없이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었어요.”


“여유가 생기니 공허해졌어요”



4년의 치료 끝에 수빈이는 어린이집에 들어갔고, 엄마에게 자신만의 시간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 틈을 노린 건 행복이 아닌 공허함이었습니다. “의지할 곳도 없고, 아이를 평생 돌봐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힘들고 우울했어요.”


그에게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이 다시 손을 내밀었습니다. 힘든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도록 심리상담비를 지원한 것입니다. “총 20번의 상담을 받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아이의 장애를 더 잘 이해하면서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당장 뭘 하면 좋을지도 생각할 기회가 됐고요.” 선희 씨는 부모 자조 모임을 만들어 먼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답니다.


그는 자신처럼 장애자녀를 돌보는 부모들에게 심리상담을 강하게 추천합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평생 돌봐야 한다는 부담이 훨씬 힘들었어요.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고요. 그런데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 방황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어요.”


잃어버린 일상을 찾아서


출처: 서울신문출처: 서울신문


장애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우울감과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서울신문이 지난 5~8월 희귀난치병 자녀를 돌보는 부모 54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직장 휴직 및 퇴사 경험은 74.9%, 월 평균 간병비 420만 원, 우울감을 호소하는 비율이 68.4%로 나타났습니다. 두려움(67.7%), 불안(65.5%), 지침(60.7%)의 감정을 느끼는 비율도 높았습니다. 가장 필요한 지원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의료비(73%)였지만, 심리치료 지원을 원하는 이들도 3명 중 1명이었습니다.


“아이 치료에 쓸 돈도 부족한 상황에 자신의 마음을 치료하겠다고 돈 쓸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있겠어요. 부디 이런 지원이 많아져서 부모와 장애자녀 모두가 행복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근, 수빈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선희 씨. 심리치료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은 엄마는 이제 조금씩 용기를 내서 잃었던 일상을 하나씩 되찾고 있습니다. 



“일도, 운동도 하고 싶어요. 무언가를 함으로써 오는 에너지가 있잖아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전문가의 조언에, 요즘 날 위해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있어요.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덕분에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글= 지화정 과장
*사진= 이선희 가족 외


 


장애자녀를 키우는 엄마에게 손을 내밀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