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선율이 마음에 닿을 때
푸르메×볼보, 장애어린이 가족을 위한 ‘유키 구라모토’ 콘서트
서울 마포구의 한 공연장.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듯, 아름다운 호수의 물이 나긋하게 흐르듯, 숲에서 새가 지저귀듯 섬세하고 따듯한 선율이 어둑한 공간을 타고 흐릅니다. 무대 중앙에 다소곳이 놓인 피아노 건반 위를 손으로 부드럽게 쓸며 두드리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던 그가 연주를 끝내고 청중에게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하세요. 유키 구라모토입니다.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9일, 합정역 신한카드 SOL페이 스퀘어에서 서정적이고 따뜻한 선율로 유명한 일본의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푸르메재단과 볼보자동차코리아가 장애 어린이 가족 및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기획한 공연입니다. 장애어린이 가족 및 사회복지 분야 종사자 등 약 320명이 특별 초청을 받아 한 자리에 모였지요. 무대 가까이 10개의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좌석을 별도로 마련해 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맘 편히 즐길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콘서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뉴에이지 아티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공연과 콰르텟(quartet)의 연주로 구성됐어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생소하지만, 2000년대 인기 드라마 ‘가을동화’와 ‘겨울연가’ 영화 등의 OST로 유명합니다. 말랑한 감성으로 눈물을 적시던 당시의 기억, 20년이나 어리고 젊었던 그 시절이 음악을 통해 고스란히 되살아났을 겁니다. 비록 엄마들은 “딸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서 좋아할 것 같았다” “아이가 피아노를 좋아해서 들려주고 싶었다”고 핑계를 대지만요.
그 마음도 알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 누군가의 엄마로, 아빠로 살다 보면 나를 위해 즐긴다는 것이 죄책감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내 아이가 평범한 일상을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더 그럴 겁니다. 이날만큼은 마음에 얹힌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즐겼기를 바랍니다.
따뜻한 음악으로 무대를 연 유키 구라모토는 공연 내내 서툰 한국어로, 그러나 재치 있는 유머를 던지며 시종일관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에 때로는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와 오보에 등 네 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콰르텟(quartet)의 공연도 이어졌습니다. 아름다운 공연에 매혹된 청중이 열정적으로 앙코르를 외쳤고 유키 구라모토에게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편히 들어갈 수 있는 공연장이 국내에 부족하기 때문에 장애가 있는 당사자나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간 문화생활을 멀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이날의 콘서트가 이들에게는 더 뜻깊게 다가왔다고 말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콘서트에 참여한 곽현민(17) 군은 “콘서트 덕분에 제 인생에 좋은 추억이 하나 더 늘었다”며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지체와 발달 장애를 함께 가진 첫째 딸 민진이, 비장애인인 둘째 딸과 함께 온 황선희(50) 씨는 “수년 전 어느 공연을 보러 갔다가 첫째 아이가 소리를 질러서 중간에 나온 후 공연장에 온 것은 처음”이라며 “젊은 시절 팬이었던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설레고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오랜만의 먼 외출에 신났는지 공연 직전까지 크고 작은 소리를 내던 민진이는, 연주가 시작되자 모든 소리와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유키 구라모토의 따뜻하고 다정한 선율은 부모의 마음뿐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도 조심스레 어루만졌습니다.
장애어린이 가족을 위해 연주한 유키 구라모토(가운데)와 푸르메재단 강지원 이사장(왼쪽), 백경학 상임대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과 문화예술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공간도, 인식도, 인내도 아직은 부족한 탓이지요. 이 콘서트가 그간의 목마름을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글= 지화정 과장(마케팅팀)
*사진= 지화정 과장, 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