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또 다른 벽이 되지 않도록
2023 독일 REHA CARE 현장에서 만난 다양한 보조기기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의 장애인 주거 현황 통계에서 주거 형태를 보면, 아파트(오피스텔)가 46.8%로 가장 많고, 단독주택(다가구용, 영업 겸용)이 34.6%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주거지에서 가장 개조하고 싶은 곳은 화장실(34.7%)이고, 현관(출입구) 17.3%, 주방 15.6%, 거실 12.9%, 침실 10.1%, 기타 9%의 순서로 개조를 희망했습니다. 대부분 집이 비장애인에 맞춰 지어지기에, 장애인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는 의미겠지요.
실제로 현장에서 보조기기 서비스를 진행하다 보면, 집안에서의 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용자가 많습니다. 특히 용변, 목욕, 식사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돕는 보조기기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지속적으로 높습니다. 가장 편안한 환경, 쉼과 안정을 위한 공간인 집이 장애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해외에서는 이러한 장애인의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요? 지난 9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진행된 <2023 REHA CARE(재활치료 및 실버용품 국제박람회)>에서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의 생활에 편리함을 더해줄 다양한 일상생활 보조기기를 함께 살펴볼까요?
휠체어․목욕의자가 접근하기 쉬운 샤워부스
스웨덴 MOVEUM사(社)는 장애인의 생활편의를 위한 보조기기에도 우아한 북유럽 감성을 담았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샤워부스는 생활환경이나 욕실 넓이에 맞춰 원하는 크기로 제작할 수 있다고 해요. 3면이 유리이며, 샤워부스 입구는 미닫이문 형태입니다. 휠체어 및 목욕 의자가 접근할 수 있도록 경사로가 있고 바닥에 미끄럼방지 기능을 추가할 수 있으며, 벽에 손잡이가 있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간편하게 설치하는 수직형 안전 손잡이
독일 REHASTAGE사(社)에서 판매하는 수직형 안전 손잡이는 집안에서 원하는 위치의 천장과 바닥에 수직 형태로 고정하여 사용하는 제품입니다. 길이는 210~300cm로 집 층고에 맞춰 설치할 수 있고, 손잡이 부분은 360° 회전이 가능해요. 기존 안전 손잡이는 벽 등에 부착하는 형태여서 별도 시공이 필요했지만, 이 제품은 별다른 시공 없이 원하는 위치에 쉽게 설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실내 이동 바퀴가 있어 유용한 리프트 용변 의자
변기에 앉고 일어서기를 위한 보조기기는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LOO LIFT사(社)에서 판매하는 리프트 용변 의자는 조금 더 진화했습니다. 변기에 앉기 위한 좌석 리프트 기능이 있는 기존의 제품은 보통 변기에 설치하여 사용했어요. 이와 달리 LOO LIFT사의 리프트 용변 의자는 실내 이동 바퀴가 있어, 화장실 출입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욕실에서 편리하게 이동하는 욕실 회전의자
독일 REHATECHNIK HEYMER사(社)는 배리어프리 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화장실을 위한 배리어프리 제품이 눈에 띄었어요. 욕실 바닥에 프레임(레일)을 설치해 그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샤워 의자를 놓습니다. X축, Y축으로 의자가 이동할 수 있으며, 의자에서 회전하는 것도 가능해 편리하게 욕실을 사용할 수 있어요. 프레임(레일)은 사용자의 환경에 맞춰 제작된다고 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작 가능한 보호자 호출 시스템
독일 CSS MICROSYSTEMS사(社)는 누워서만 생활이 가능한 장애인의 편의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는 장애인이 필요한 순간에 본인이 사용 가능한 신체 부위를 이용해 보호자를 호출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손, 발, 머리, 호흡 등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스위치와 센서, 거치대를 설치합니다.
<유니버설홀더>
차세대 보조기기를 표방하는 덴마크 MANIGRIP사(社)의 유니버설홀더는 계속해서 새롭고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많은 환자와 치료사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유니버설홀더는 손으로 쥐기 어려운 물체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충전식 전자제품으로 연필, 칫솔, 포크 등을 전자동으로 고정 및 해제할 수 있지요. 또한 커버는 분리 후 식기세척기로 세척이 가능하도록 제작해 위생 문제에 대한 해결책까지 고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거환경이 장애인에게 또 다른 ‘벽’이 되지 않도록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의 주거 소유 형태는 월세, 전세 등 자가가 아닌 경우가 42%를 차지합니다. 국가의 주거복지사업을 통해 영구임대주택과 국민임대주택에서 거주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임대 형태의 주거환경에서는 장애인의 생활 편의를 위한, 공사나 개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2023 REHA CARE>에서 만난 제품 가운데 설치와 복구가 쉽고 개조공사가 필요하지 않은 제품, 현재 보조기기 시장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중심으로 소개했습니다.
<2023 REHA CARE>에서 아쉬웠던 점은 지난 몇 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외출이 어려웠던 환경에서 온라인과 IT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보조기기와 해결 방법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시도된 다양한 활동과 서비스 제공 사례들이 외국에서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신선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제6차 장애인 정책종합계획(2023∼2027년)에 따르면,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 및 자립·주거 결정권 강화를 9대 정책분야 중 하나로 설정하고, 장애인 자립 및 주거 자기 결정권 강화를 중점과제로 추진한다고 합니다. 특히 장애인 거주시설과 관련해 다수의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 등을 연계하여 1인 1실 위주로 운영하는 독립형 주거 서비스 제공기관을 신설하고 관련 설치·운영 기준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정책들이 잘 추진되어 주거환경이 장애인에게 또 다른 벽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온전한 휴식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환경으로 변모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더불어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IT 기술 활용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기를 희망합니다.
*글= 강용원 서울시동남보조기기센터장
*사진= 강용원 센터장, https://kangoo-reh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