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을 여행의 온도
비장애형제·자매 효성 나들이 현장 스케치
장맛비가 예고된 주말 아침, 엄마 혹은 아빠와 함께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푸르메재단에 모여듭니다. 선물로 받아든 민트색 티셔츠를 입고 정해진 조의 자리를 찾아 앉은 아이들. 처음이라는 어색함에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옆에 앉은 부모님께 기대어 소곤대다가 손에 든 휴대폰으로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8살부터 18살까지 장애 형제나 자매를 둔 다양한 나이대의 아이들 13명이 모였습니다. 형제·자매보다 건강하다는 이유로 가정에서 희생을 감내해온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 효성과 푸르메재단이 오늘 하루 즐거운 나들이를 준비한 것이죠. 이번 여행지는 ‘서울’입니다. 장맛비에 즐겁게 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날씨와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잠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와 아쿠아리움으로 목적지를 정했습니다. 다행히 날씨는 우리 편입니다. 하늘을 고르게 덮은 옅은 회색구름이 비는 미루고 햇빛은 막아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돼줍니다.
여행의 시작
아침 9시 30분, 부모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오른 아이들. 자리는 많으니 자유롭게 앉으란 얘기에 엇비슷한 또래 옆에 슬쩍 자기 가방을 놓아봅니다. 그리고 목적지까지 가는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동안 급격히 친해진 아이들은 버스에 내려 아이스링크장에 도착할 때까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스케이트 타 본 사람?”
오늘 하루 스케이트 강사로 낙점된 푸르메재단 최미정 간사의 질문에 손을 드는 아이는 고작 서너 명뿐. 8살 꼬마들을 제외하고는 타봤을 거란 예상이 무참히 무너집니다. 결국 지원을 나온 푸르메재단과 효성 직원 모두가 스케이트를 꿰어신고 1대 1 강습에 나섭니다.
아이스링크 내벽의 바에 온몸을 지지하며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딛던 아이들이 1시간쯤 지나자 지지대 없이 빙판 위에 서더니 불안정하게 한 발씩 밀기 시작합니다. 또 1시간이 흐르고, 홀로 한 바퀴를 돌아오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도전한 아이들에게 직원들이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줍니다.
조금씩 지쳐가는 아이들에게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건넵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무표정한 아이들의 얼굴에도 슬며시 미소가 배입니다. “스케이트를 처음 탄 기분이 어때?” “힘들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다시 오면 더 재밌게 탈 수 있을 것 같아요.”
열심히 움직여 에너지를 쏟아냈으니 다시 충전할 시간. 요즘 아이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패밀리레스토랑으로 향합니다. “우리 T.G.I. 갈 거야.” “거기가 어딘데요?”
치킨샐러드부터 스테이크, 파스타까지 푸짐하게 나온 음식에 수다도 멈추고 열심히 먹던 아이들은 다 먹지 못하고 배를 두드립니다. “더 먹어. 많이 먹어!” “너무 배불러요. 더 못 먹어요!”
마지막 코스는 아이들이 가장 고대하던 아쿠아리움입니다. 아침부터 “벨루가를 보고 싶다”며 기대감을 가득 드러내던 아이들. 그도 그럴 것이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스타인 벨루가(흰고래)가 곧 야생으로 돌아갈 계획이라 작별인사를 할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친해진 언니 손을 꼭 잡고, 옆 친구에게 장난도 치며 아쿠아리움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휴대폰을 카메라 삼아 아름답게 빛나는 비늘, 거대한 크기, 독특하고 생소한 모습의 갖가지 해양생물을 담아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친구들을 불러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생물을 구경시켜주기도 합니다. “이것 봐봐. 이거 쉬리래. 진짜 예쁘지?”
왼쪽 오른쪽 수조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탁 트인 공간에 다다릅니다. 정면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수조가 있고 그곳에서 둥글고 귀여운 얼굴에 희고 우아한 몸으로 유연하게 헤엄치는 벨루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다다 수조로 달려간 아이들은 한동안 이 매력적인 흰고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벨루가가 너무 예뻐요. 엄청 큰데 엄청 빠르게 움직여요!”
아쿠아리스트들이 수조 안에 직접 들어가서 바다생물에게 먹이를 주는 프로그램도 관람합니다.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다채로운 물고기의 향연에 아이들의 눈도, 사진을 찍는 손도 바쁩니다. 펭귄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아쿠아리움 코스도 끝이 났습니다.
여행의 끝
버스로 향하는 길. 아이들은 처음과 달리 목소리를 높여 조잘조잘 얘기하며, 발에 리듬을 싣습니다. 흥얼흥얼 노래도 합니다. 그러더니 버스에 탄 지 얼마 안 돼 아이들의 고개가 꾸벅 떨어집니다. 그렇게 푸르메재단까지 가는 한 시간 동안 모두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오늘 하루가 너무 신났던 것 같죠?
버스에 내려 푸르메재단을 몇 걸음 남겨놓고 후두둑, 비가 쏟아집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버티다 내려주는 비가 고맙기만 합니다.
13명의 아이에게 이날은 어떤 하루로 기억될까요? 엄마 없이 떠난 첫 여행의 두려움과 설렘, 작은 성공을 맛본 날, 열띤 노력 후에 맛본 아이스크림의 달콤함, 귀엽고 우아한 벨루가와의 마지막 추억, 날씨가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준 날, 또는 가장 시원하고 설레고 아름다웠던 어느 여름날의 여행... 어떤 기억으로 남든, 그 기억의 온도는 ‘따뜻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사진=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