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화상 이겨낸 이지선 교수
[중앙일보] 권혁재의 사람사진
A: “푸르메재단에 반가운 손님인 이지선 교수가 왔습니다. 그는 재단이 6평 지하에서 시작할 때부터 푸르메와 함께했습니다.지금껏 강연과 간증을 통해 푸르메재단을 알리는 데 앞장서왔고요. 이번에 이 교수가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라는 책을 냈네요. 40번이 넘는 수술과 뉴욕마라톤 완주, 유학의 여정을 담은 책입니다.”
최근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의 SNS에서 본 글이다. 글을 보자마자 이지선 교수가 2016년에 들려준 얘기가 떠올랐다.
A: “제가 푸르메재단 기금 마련 차 두 번 마라톤을 완주했어요. 2009년 뉴욕마라톤(7시간22분26초), 2010년 서울마라톤(6시간45분)에서 죽을 힘을 다해 완주했어요.”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그에게 마라톤은 말이 되지 않는 도전이다. 2000년 7월 30일 7중 교통사고로 전신 55%, 3도 화상을 입은 그였다. 이후 피부 이식 수술만 무려 40여 차례 했다. 그 피부로 땀 배출이 원활치 않으니 체온 조절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아닌 재활병원의 어린이를 위해 도전한 게다.
2016년 6월 이지선 교수는 미국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그 박사 학위를 받는 지난한 과정을 설명하며 스스로 “제가 공부할 때 LA 쭈글이였어요. 누가 봐도 꼴찌였어요. 그런데 졸업은 꼴찌가 아니었어요”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제가 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을 가닥 잡아가는 상황입니다”라며 한마디 덧붙였다.
2016년 6월 이지선 교수는 미국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그 박사 학위를 받는 지난한 과정을 설명하며 스스로 “제가 공부할 때 LA 쭈글이였어요. 누가 봐도 꼴찌였어요. 그런데 졸업은 꼴찌가 아니었어요”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제가 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을 가닥 잡아가는 상황입니다”라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가 고통을 딛고 일어나 남을 위해 살고자 마음먹은 계기가 뭘까? 그가 쓴 『꽤 괜찮은 해피엔딩』에 답이 보였다.
A: “나는 그날 이후의 시간을 살았다. 살아남기 위해 고통을 견디었고, 조금 더 쓰기 편한 몸을 갖기 위해 수십 차례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꿈을 꾸었고, 그 꿈을 꾸기 위해 노력했고, 또 그 시간을 같이 버텨준 사람들을 사랑했고, 사랑받으며 살았다. 어제를 돌아보며 슬퍼하기를 멈추고 내게 주어진 오늘을 살았다.”
2016년 이지선 교수가 “7월 30일, 처음엔 기억했죠. 이젠 잊어버려요. 오빠도 ‘오늘이 그날이네’라며 꼭 전화했었는데 이젠 오빠도 잊어 가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는 그들이 그만큼 편해졌고, 또 그만큼 자신의 삶을 산다는 의미였다.
그는 좌우명이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했다. 이는 아무리 어두워도 계속 가면 그 끝에 빛이 나온다는 의미였다. 그가 주어진 오늘을 ‘꽤 괜찮은 해피엔딩’으로 사는 이유이기도 했다.
*글,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82911#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