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해피엔딩

[푸르메 인문학 산책] 이지선 홍보대사 강연 


 



이지선 교수가 푸르메재단을 방문했습니다. <지선아 사랑해> 이후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라는 신간을 낸 기념으로 푸르메 가족들을 위한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이지선 교수는 2005년 푸르메재단이 창립한 해, 홍보대사를 맡아달라는 백경학 상임이사의 제안을 수락한 이후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강연도 수차례, 두 번의 마라톤을 뛰고, 보험 기부도 하는 등 재단의 사업을 알리는 일이라면 늘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가수 션을 홍보대사로 영입한 것도 이지선 교수의 힘입니다.


강연의 시작을 연 것은 역시 사고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당사자가 웃으며 얘기하는 그때의 이야기에 참석자들의 눈은 이미 촉촉이 젖어있습니다.


삶이라는 선물 



“사고가 나서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였어요. 간호사가 빨대를 꽂은 컵을 가져왔어요. 물을 넘길 수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서요. 목으로 넘어온 그 물이 너무 시원하고 맛있었어요. 기뻤어요. 살아있기에 누릴 수 있는 좋은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사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선물도 많았어요.”


이지선 교수의 주변에는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족은 힘을 주기도 하지만 짐이 되기도 해요. 특히 환자가 있으면 더 그렇죠. 다행히 저희 가족들은 저를 짐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힘이 되어 줬어요. 그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고 후 제 생일은 1년에 2번이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막상 1주년이 되니 전혀 생일 같지 않은 거예요. 여전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수술도 계속되면서 이 생활이 언제 끝나는 건가 싶기만 했어요. 그런데 그날 친구들이 케이크를 들고 병원을 찾아왔어요. 그때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축하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지 않은 강연시간에는 늘 좋은 것만 담아내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늘 오르락내리락 했다는 이지선 교수. 힘든 순간마다 기꺼이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 덕분에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기적이라는 것


이지선 교수는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라고 말하며, 화면에 사진 한 장을 띄웠습니다.



“사고가 난 지 2년 후에 찍은 거예요. 저만 보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미안하다는 말만 했던 오빠가 행복하게 나온 것이 너무 좋아서 블로그에도 올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아래 ‘솔직히 무섭다’는 댓글들이 달리는 거예요. 처음에는 상처였는데, 얼마 후 너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저는 거울을 볼 때마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귀엽다고 생각기도 했거든요. 그때까지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새 피부가 돋아나는 기적이 생기기를 기도했는데, 그 댓글들 덕분에 남들이 보는 대로 보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눈으로 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진짜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지선 교수는 <지선아 사랑해>를 통해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고통이 화상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실제로 책이 나오고 난 후 마음에 흉터를 가진 많은 분들께 편지를 받았어요. 이 책 덕분에 인생을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살아남기를 잘했다, 의미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외상 후 성장



이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화상 환자 중 많은 이들이 삶을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옷으로 숨겨지지 않고 보이는 곳에 흉터가 남은 환자들 중 사고 후 가족 관계가 더 좋아진 사람들이 그 말을 자주 한다고 이 교수는 얘기합니다.


“이 현상을 ‘외상 후 성장’이라고 불러요.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긍정적인 현상이죠. 전 인구의 76%가 상실, 이혼, 사고, 이별, 질병, 재해 등으로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보통은 악몽, 수면장애, 불안, 회피, 우울, 죄책감 등의 증상을 겪게 되는데, 이것을 잘 극복하면 자기효능감, 삶의 관점과 우선순위 변화, 공감능력 향상, 친밀감 증가, 영적 성숙 등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한다는 거예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빅터 프랭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불행에는 좋은 것이 없지만, 불행으로부터 좋은 것을 걸러내는 것은 가능하다”고.


이지선 교수는 외상 후 성장으로 가는 데 세 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생각의 되새김질을 통해 상처를 인지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말이나 춤, 그림 등 그 방법은 다양해요. 저는 글쓰기를 통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슬픔을 애도하면서 회복을 했던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는 것이 마지막 단계이고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주변의 존중과 관심, 애정이 스트레스를 이기고 앞의 단계들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거든요.”


인생 다시 쓰기



“저는 사고를 ‘당했다’고 하지 않고 ‘만났다’고 얘기해요. 이렇게 말을 바꿈으로서 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아닌 어려움을 극복해낸 사람이 될 수 있거든요.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잖아요. 저를 소개할 때에도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 이지선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신간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라는 제목에는 모두가 끝이라고 말하던 그때, 끝이 아니라는 기대감으로 살았고 회복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백경학 상임이사님의 제안으로 뉴욕마라톤을 출전한 적이 있어요. 저를 포함해 누구도 제가 끝까지 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7km쯤 남기고 더 이상 걸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 때 누군가 제 이름이 적힌 노란 피켓을 들고 응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 다리에 힘이 생기더라고요. 8시간을 넘겨 거의 꼴등으로 완주를 했지만 끝까지 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응원 덕분이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앞서가는 것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지지가 이토록 큰 힘이 된다는 것을요.”


장애인 가족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지선 교수는 강조합니다. “푸르메재단의 ‘기적의 손잡기’ 캠페인 참여로 장애어린이와 그 가족들에게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세요.”



내내 촉촉한 눈으로 강연을 듣던 백경학 상임이사는 "예전에도 이지선 씨의 강연을 많이 들었지만 다시 들어도 여전히 감동적인 강연"이라며 "푸르메 임직원들에게 다시 한 번 좋은 강연을 들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장애자녀의 부모들에게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보다 더 많이 듣는 말은 "이 아이는 내 인생의 선물"이라며 "덕분에 내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 앞에서 운이 없었다고 좌절하지 않고,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기에 맛볼 수 있는 달콤한 결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지지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여러분의 곁에는 누가 있나요? 종종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있나요?


*글=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김미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이지선 교수 제공


이지선 홍보대사와 함께 '기적의 손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