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의 온전한 자립이란

[특별 대담] 발달장애인의 온전한 자립으로 가는 길


 


참석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장춘순 (前 우영농원 이사)

김호진 (고용개발원 조사통계팀장)

임규형 (푸르메소셜팜 가공서비스사업팀장)


진행

최미영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사람중심서비스국장)


 취업한 발달장애인, 삶 만족도·자아존중감 더 높아


푸르메재단 대회의실에서 이뤄진 특별대담 현장
푸르메재단 대회의실에서 이뤄진 특별대담 현장

최미영(이하 최): 오늘은 ‘발달장애인의 온전한 자립’, 그중에서도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푸르메재단이 최근 기부자와 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7.3%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는 어떨까요.


김호진(이하 김): 고용개발원이 진행한 ‘2020 발달장애인의 일과 삶’ 조사 결과, 전체 성인 발달장애인 중 취업자 비율은 24%(약 3만8000명)입니다. 그 가운데 87.5%는 직장을 계속 다니고 싶어하고(보호자 판단 기준), 미취업자의 45.8%가 취업을 희망한다고 해요. 전체 발달장애인 가운데 언어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비율은 72.8%인데요. 종합해 보면, 타인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할 수 있고 상황 인지가 가능한 발달장애인은 대부분 취업을 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호진 고용개발원 조사통계팀장
김호진 고용개발원 조사통계팀장

장춘순(이하 장): 저는 35살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입니다. 아이가 2살 때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후로 줄곧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 안에는 당연히 일자리도 포함됐고요. 농업이 아이에게 유용하겠다고 생각해서 경기도 여주에서 식물공장을 시작했는데, 제힘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그때 마침 인터넷에서 푸르메소셜팜 이야기를 보았죠.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첨단기술로 농작물을 키우는 푸르메소셜팜이 딱 제가 원하던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운영하던 농장터를 기부하고 좋은 일터를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김: 발달장애인의 취업 욕구는 높은 편이에요. 취업이 발달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커요. 취업한 발달장애인은 삶의 만족도, 자아존중감, 사회참여 의지 등이 비취업자보다 훨씬 높습니다. 당사자뿐 아니라 보호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크죠. 일상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보면 취업한 발달장애인의 보호자는 56.7%가 만족하지만, 취업희망자의 보호자는 33.3%, 취업비희망자의 보호자는 18.2%에 그쳤습니다.


최: 임규형 팀장님은 푸르메소셜팜에서 발달장애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계신데요. 지난 1년간 지켜본 입장에서 발달장애인의 일자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규형 푸르메소셜팜 가공서비스사업팀장
임규형 푸르메소셜팜 가공서비스사업팀장

임규형(이하 임): 사실 처음에는 발달장애 직원들이 취직해서 적응하는 동안 취업만족도가 낮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어요. 그런데 함께 일해보니 취업만족도가 입사 초기부터 매우 높더라고요. 발달장애 직원 스스로가 일자리의 중요성을 알기에 일찍 출근하려고 노력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보려는 자세가 두드러집니다. 취업한 지 1년이 되면서 만족도나 자신감이 높아지다 보니, 연애나 결혼, 자립,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도 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직원들을 보면서 ‘발달장애인에게도 취업은 사회생활의 시작’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장: 취업해서 일하고 있는 제 아이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즐겁다’예요. 취업해서 어딘가에 소속된 ‘직장인’이라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껴요. 한 번도 안 쓰던 단어를 동료에게 배워와서 쓰기도 하고요. 아이가 3~4살에 말 배울 때 부모에게 주는 기쁨을 요즘도 주고 있습니다.


백경학(이하 백): 푸르메센터 1층에 발달장애인 바리스타가 일하는 ‘행복한 베이커리&카페’가 있어요. 제가 출근하다가 직원에게 왜 이렇게 일찍 나왔느냐고 물으면 ‘직장에 오는 게 너무 즐겁다’고 해요. 월급날이 되면 (취업하지 못한) 친구들이 카페에 와서 기다려요. 우리 직원이 월급을 받아서 빵을 사준다고 하는데, 그런 소소한 일상을 굉장히 즐거워합니다. 사실 가정에 발달장애인 자녀가 있으면 가정 자체가 붕괴하기 쉬워요. 일자리는 단순히 장애 당사자 행복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 전체의 행복과 만족도가 달린 문제예요.


누구나 원하는 일 하며 살아갈 기회 필요


최미영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사람중심서비스국장
최미영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사람중심서비스국장

최: 푸르메재단이 만든 ‘푸르메소셜팜’은 어떤 의미로는 혁신적입니다. 농업이라는 분야 때문인데요. 고용개발원 조사를 보면 발달장애인 취업자의 41%가 제조업에 종사하고, 농림어업은 6.3%로 낮은 현실이거든요. 최근 푸르메재단이 시민(기부자, 잠재기부자 포함)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발달장애인이 어떤 직종에서 일할 것 같은가에 대한 질문에 제조업, 요식업(바리스타, 제빵 등) 등 순으로 대답했어요. 다양한 분야와 직무가 있는데, 푸르메재단이 농업을 결합한 첨단 스마트팜 기반의 일터를 건립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 보호자에게 장애자녀가 어떤 업무를 원하는 것 같으냐고 물었을 때, 농림어업은 3.3%로 나왔어요. 선호도가 낮지요. 그런데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농림어업에 대한 선호도는 10%까지 높아집니다. 현재는 고연령층에서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지만, 저연령층에서도 희망하는 비율이 높아지고요. (선호도에 비해 농업 종사자 비율이 낮은 것은)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이 주로 수도권에 거주하기에 주변에 적당한 일터가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일터 자체가 없기 때문에 고용개발원에서도 농임어업 분야 취업을 알선할 기회가 없어요. 출퇴근이 용이한 위치에 푸르메소셜팜 같은 일터가 늘어난다면 선호도나 취업 희망 비율은 상당히 높아지리라 예상합니다. 농장 안에 다른 직종·직무(제조업, 요식업, 서비스업 등)가 함께 있다면 더욱 높아질 것이고요.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푸르메소셜팜과 같은 일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편입니다. 일본만 보더라도 이미 농촌인구가 고령화함에 따라 빈 토지를 임대해 장애인 일터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유럽 등도 농장에 조립, 목공 등을 할 수 있는 시설을 포함해 장애인이 적성에 맞는 직무를 선택해 일할 수 있게 돼 있죠. 우리나라도 취업을 원하는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연결해 줄 수 있도록 다양한 직무를 연구하고 그에 맞는 일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최: 사실 이건 발달장애인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발달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일을 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지요. 사회적으로 그런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봅니다.


임: 발달장애인 직원을 채용하고 직무교육을 위해 여주 지역 버섯 농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농가 분들이 푸르메소셜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며 “차라리 판로를 개척해 지역 농가의 농산물을 팔아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막상 교육을 마치고 저희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우리랑 같이 채용하자”면서 장애인 고용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시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푸르메소셜팜에서 채용, 직무개발, 직무교육 등 시스템을 잘 갖춘다면, 훌륭한 장애인 취업 플랫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전한 자립은 촘촘한 인간관계 속에서 완성


최: 푸르메재단이 일자리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사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발달장애인의 온전한 자립’을 위해서입니다. 그 과정에서 푸르메재단이 더 고민하고 도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김: ‘온전한 자립’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에는 발달장애인 가족을 둔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은데요. 사실 보호자들에게 물어보면 ‘장애 당사자가 혼자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80%에 가깝습니다. 당사자에게 물어도 부모님과 살고 싶다는 대답이 50%, 결혼하고 싶다는 대답이 25% 정도예요.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 ‘자립해서 (혼자)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요. 제 생각에 ‘온전한 자립’은 가정·사회·정부 누구든 ‘서로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상황이 해소된 때가 비로소 온전한 자립이 아닐까요.


최: 제가 미국에서 만난 발달장애인협회장도 “왜 발달장애인에게만 자립을 강요하느냐”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사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이든 누구도 자립적으로 살지 않아요. 다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지요. 장애 당사자를 사랑하고 삶을 지지해줄 주변인이 가장 절실하지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도 이를 위해 장애인의 활동영역을 점진적으로 넓혀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그런 제도가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춘순 前 우영농원 이사
장춘순 前 우영농원 이사

장: 부모가 살아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아요. 사실 우리나라 특수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고, 교육에 필요한 비용도 지원하지요. 어려운 것은 ‘관계’입니다. 누가 누구를 돌본다기보다는 ‘함께 사는’ 사회가 필요해요. 시설에서 통제당하고 돌봄을 받으며 사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생활공간이 있고 냉장고에서 먹고 싶은 걸 꺼내먹고, 옷장에서 원하는 옷을 꺼내 입고, 원하는 시간에 잘 수 있는 삶을 살길 바라요. 그게 부모인 제가 원하는 거예요.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지켜봐 주고 함께 사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저도 아들의 동네 사람으로 살고, 제가 세상을 떠나면 다른 사람들이 아들과 더불어 사는 그런 모습을 꿈꿉니다.


백: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한 단체에서는 디자인 전공 학생들과 협업해서 자폐청년들의 아이디어로 카드를 만들어요. 매년 취리히 은행에서 제작 의뢰를 한다고 해요. 우리가 봤을 때 다소 비싼 장당 3만 원에 산다더군요. 이런 경우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카드를 3000원에 사고, 2만7000원은 기부금으로 처리하는데 스위스에서는 그러지 않아요. 장애인들이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한 것인지를 살펴보고, 그에 합당한 가격(3만 원)을 책정해서 산다는 거예요. 그런 문화가 부럽더군요. 우리 사회에도 그런 풍토가 조성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임: 농장에서 38명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모여 일하니 좋은 점이 있어요. 일반 기업에 소수의 장애인이 있으면 ‘장애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텐데, 그런 게 없어요. 서로 다른 점이 있어도 ‘이런 점은 ~씨 특징이야’라고 말합니다. 장애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특징이 되는 거예요. 서로 배우면서 성장하고요.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규칙과 방법을 배워가고요. 무엇보다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관계를 쌓아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최: 3%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요. 그 역할을 푸르메재단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행복을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우리가 바라는 사회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대담으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오선영 팀장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이정훈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장애청년 자립을 위한 일터를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