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2편
[산하기관 탐방기]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_2편
안녕하세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던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어린이 재활치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살펴볼 푸르메인턴 오정윤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시작한 탐방기였는데, 벌써 가을에 접어들었어요. 쌀쌀해지는 날씨에 다들 가을 타고 계시는 것 아니겠죠?
지난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습니다.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된 한글날은 세종대왕의 주도하에 제작, 반포된 ‘훈민정음’으로 시작된 오늘날의 ‘한글’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제작할 당시 많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심하게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신분이 낮은 계급이나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천한 말이라고 하여 ‘언문(諺文)’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누구나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한글의 속성이 오늘날에는 위대함으로 인정받고 있죠.
자신만의 촛불 하나를 바라보고 모두가 반대하는 길을 꿋꿋이 걸어갔던 세종대왕이 아니라면, 오늘날 우리는 한글 대신 어려운 한자로 모든 글을 써야 했을지도 몰라요. 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모양과 표현이 아름다운 우리말이 더욱 풍성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한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안 될 것’이라고 외칠 때, 단 하나의 목표를 갖고 역사를 바꾸려는 위대한 바보가 여기 또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린이 전문 재활치료 분야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병원. 바로,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린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이에요.
인터뷰를 진행한 김윤태 병원장은 “기존에 있었던 재활병원들이 어린이 재활 치료를 그만두고 성인 재활병원으로 변신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의료서비스 질이 기존의 선진국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재활 의료서비스는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며 힘겨웠던 병원 건립 과정을 전했습니다.
특히 장애어린이의 재활치료 과정은 성인의 재활치료와 완전히 다르다고 해요. 성인의 경우 한 명의 치료사가 여러 환자를 담당할 수 있어요. 반면 어린이 재활치료는 아동과의 소통이 어렵다는 점, 스스로 몸의 행동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점 등으로 인해 1:1 또는 환아 한 명에 치료사 두 명이 붙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김윤태 병원장은 병원을 운영하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인력’에 대한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의 의료진, 치료사, 직원 모두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아동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전문인력의 수급, 낮은 동기부여와 높은 이직률은 병원장으로서 최대 고민이라네요.
어린이 재활치료 과정에서 부족한 것은 인력만이 아닙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의 가장 큰 자랑 중 하나인 전문화된 ‘통합재활’ 치료 또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과정인데요. 1편에서 가볍게 설명했듯이 ‘통합재활’이란 환아의 장애 유형, 정도, 특징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다양한 진료과의 의료진이 협진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신체적 장애가 있는 아이라고 해도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아이가 있고, 혼자서는 걷지 못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힘든 아이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비슷한 유형의 장애라도 정도에 따라, 신체의 발달 정도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성인에 비해 다양한 발달 정도를 지닌 아이들에게 맞춤형 치료를 제공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노력과 비용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죠.
성인보다 더 많은 치료사, 성장 단계에 따라 더욱 다양하고 포괄적인 재활 방법이 필요한 어린이 재활치료는 이러한 이유로 높은 비용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린이재활병원은 무조건 적자’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죠. 같은 치료를 진행해도,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한 구조이니까요.
‘모든 장애어린이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 입원하거나 낮 병동을 이용하려면 아이들과 보호자가 오랫동안 대기해야 합니다. 많은 이용자가 외래진료와 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중증이거나 먼 곳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입원병동을 이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입원 병동의 부족과 건강보험 수가 등 현실적인 문제로 길게는 2년까지 기다렸다가 치료받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김윤태 원장은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우리 정부가 재활 의료서비스에 관심 갖고 본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된 권역별 재활병원 건립 정책이 시스템 체계로 구축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고 해요.
“재활 의료서비스 중에서도 어린이 분야는 관심을 받게 된 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와 시민의 관심이 조금만 더 함께한다면 금방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의 설립은 우리나라의 어린이재활 분야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번 정부는 출범 이전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하나의 공약으로 약속했고, 현재 실제로 지역별 어린이전문재활병원 및 재활센터 건립 등 확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없다는 점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전문인력의 양성, 선진화된 어린이재활의료서비스 공급체계 마련, 치료(진료)수가 개선을 통한 경영의 안정적 기반 형성 등의 시도와 보완이 계속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 장애어린이들도 선진국 못지않은 재활치료 시스템을 누릴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물론 빠른 변화를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윤태 병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시민과 기업, 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모아 세운 병원이라는 정체성을 운영 과정에서도 연결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업과 시민, 정부의 책임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의 각 진료실, 치료실 입구에는 병원 건립에 큰 도움을 건넨 사람들의 기념사진이 명패처럼 붙어있었습니다. 일반 병원에서는 보기 힘든 신기한 모습이었죠. 최고의 인력, 최고의 치료를 자랑하면서도 아이들이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기적의 병원을 만들겠다는 병원장님의 꿈은 모든 장애 어린이들의 꿈이자, 아이들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꿈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윤태 병원장은 재활의학과 전문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재활의학은 전인적, 포괄적 의학이며 능동적인 철학이라고 하네요. 즉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의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자세를 갖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나 ‘병’ 자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개 한 개의 세부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한 사람의 포괄적인 삶의 모습을 회복시키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 재활의학입니다.”
인터뷰의 끝머리에서 ‘앞으로의 꿈과 목표’를 물었더니 역시나 병원에 대한 고민과 열정뿐이었습니다. 어린이와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병원, 직원이 자부심을 갖는 일터,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어린이 재활치료의 모델이 되자는 것 등이었죠.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그 이름처럼 병원의 역사도 아직 ‘어린이’입니다. 시민의 힘으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재활전문병원이지만, 구체적인 비전과 단단한 다짐에서 세계 최고의 어린이재활병원이 되겠다는 큰 꿈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병원을 탐방하기 전까지 저는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이 홀로 꿋꿋하게 외로운 길을 나아가는 개척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험난한 길 앞에 첫발을 내딛기란 쉽지 않지만, 푸르메어린이병원은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느낍니다. 푸르메재단과 푸르메 가족들, 푸르메어린이병원 가족들의 노력이 함께하고 있지만 여전히 더 많은 어린이를 치료하기 위해 더 많은 ‘함께’가 필요합니다.
*글, 사진= 오정윤 인턴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