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없어도 축구할 수 있다?
독일 보조기기 박람회 연수기 2편
여러분은 독일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아마 십중팔구 ‘자동차’, ‘축구’, ‘맥주’를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장애인복지 분야 가운데 보조기기 또는 재활공학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독일에서 매년 열리는 보조기기 박람회인 ‘REHA CARE’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보조기기 박람회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독일에서 9번째로 큰 도시로 약 57만 명이 거주하는 뒤셀도르프에서 개최되었지요. 보조기기를 다루는 전문인으로서 많은 것을 보고 시야를 넓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와, 굉장히 크다!’ 독일 보조기기 박람회(2019 REHA CARE)에 첫 발걸음을 내디디며 들었던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의 코엑스, 킨텍스보다 훨씬 규모가 큰 뒤셀도르프 MESSE 박람회장의 5개 홀이 전부 보조기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입구 가장 가까이에 마치 체육관처럼 꾸며진 홀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장애인 생활체육을 체험하고 다양한 기구를 시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 체육을 떠올리면 휠체어 댄스, 농구, 탁구, 테니스, 보치아 정도가 먼저 떠오릅니다. 독일 보조기기 박람회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제 편견을 깨뜨리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반 체육시설을 통합적으로 이용합니다. ‘장애인 친화 체육시설에 대한 인증제도’ 등을 활용해 체육시설의 장애인 접근성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지역별 스포츠클럽이 ‘모든 국민을 위한 생활체육 활성화’의 핵심 역할을 담당합니다. 독일 전체에 약 9만3000여 개의 스포츠클럽이 운영되는데, 이 중 1/3에서 장애인과 만성질환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합니다.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클럽에서 장애인·비장애인의 통합체육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 체육에서도 분야별 전문성을 위해 <재활스포츠>, <예방스포츠>, <장애인스포츠>, <엘리트체육> 4가지 자격제도로 세분화하여 운영합니다. 이러한 제도와 다양한 프로그램의 결과는 엘리트 체육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 순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대 동계패럴림픽에서 독일은 종합순위 1~2위를 다투며, 하계패럴림픽에서도 꾸준히 10위권 안에 들어갈 정도의 스포츠 강국입니다.
스포츠 중에서도 독일은 ‘축구’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한쪽 다리가 없는 절단 장애인도 축구를 할 수 있을까요? 제 짧은 식견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번 독일 보조기기 박람회에서 절단 장애인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양손에 보행보조지팡이를 잡고, 한쪽 발로 축구공을 제어하고 슛을 했습니다. 보조지팡이를 사용하느라 비장애인보다 체력소모가 더 크겠지만, 비장애인과 함께 축구를 즐기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보치아와 비슷한 휠체어 볼링도 체험했습니다. 보치아처럼 공을 굴릴 수 있는 장비가 있으며, 이 장비를 어깨에 걸치고 볼링공을 올려놓습니다. 볼링공을 손으로 밀거나, 레버를 작동시키는 끈을 잡아당겨 공을 굴려 핀을 쓰러뜨리는 종목입니다. 직접 체험해 보았는데, 아쉽게도 저는 스트라이크와 스페어 처리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손으로 하는 볼링보다 공의 진행 방향을 더 미세하게 조절해야 한다고 느꼈고, 장비를 올려놓은 어깨를 움직임이 없이 안정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였습니다.
장애인사이클대회는 우리나라에서도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습니다. 보통 장애인과 한팀이 되어 달리는 텐덤스프린트와 핸드사이클 경기가 널리 알려진 종목입니다. 독일 보조기기 박람회에서 만난 장애인사이클 선수는 왼쪽 하퇴 절단 장애인으로, 의족을 하고 사이클을 타고 있었습니다. 페달을 돌릴 때마다 절단 부위와 의족의 마찰 등으로 큰 통증이 있을 것으로 생각됐는데,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페달을 밟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장애인들이 이러한 스포츠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애인 체육 분야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다양한 장비 개발, 장비를 제작·생산할 수 있는 기술 연구, 국가와 주정부의 지원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암벽등반이나 트레킹을 할 수 있을까요? 암벽등반 체험장에는 중증장애를 가진 아동·청소년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차례가 다가오면 장애아동·청소년들은 안전모를 쓰고 있고, 손에 장갑을 낍니다. 그런 다음 휠체어 프레임 여러 곳에 암벽등반용 줄을 연결하는데, 이 줄들은 다시 도르래를 지나 체험을 도와주는 진행요원들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진행요원들이 동시에 줄을 잡아당기자 장애아동·청소년이 탄 휠체어가 점점 높이 올라갑니다. 암벽등반, 트레킹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마련된 장치라고 합니다. 밑에서 올려다봐도 아찔한 높이인 10~15m까지 올라갔습니다. 바닥에 내려온 장애아동·청소년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이밖에도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유도시범단, 장애인 양궁, 장애인 아이스하키, 장애인 배드민턴, 장애인 테니스 등 많은 스포츠를 직접 체험하고, 시연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된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독일이 참 부러웠습니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생각이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독일의 장애인들에게서 건강과 더불어 활력과 여유로움까지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글, 사진= 강용원 서울시동남보조기기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