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장애인 위해 낮은 곳에서
김성수 명예이사장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특강
평생을 장애인의 친구이자 아버지로 살아온 김성수 푸르메재단 명예이사장. 대한성공회 주교이자 한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특수학교 성베드로학교 교장,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대지에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의 촌장으로서 한평생 늘 낮은 곳을 향했습니다.
장애인을 만나면 반갑게 손을 맞잡고는 아이 같은 해사한 미소를 지은 채 하이파이브를 하고 엄지를 치켜듭니다. 그래서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장애인들이 김성수 명예이사장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나 봅니다.
김성수 명예이사장은 옆 사람의 부축을 받아 걸어야 할 만큼 몸이 쇠약해졌지만, 올곧은 정신으로 “장애인을 위한 일이 많아져야 한다”고 외치는 김성수 명예이사장. 11월 7일, 오래간만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찾았습니다. 푸르메재단이 ‘환자 중심의 재활병원 건립’을 목표로 닻을 올릴 때부터 지켜봐온 산증인으로서 푸르메의 정신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하던 건장한 청년 시절, 폐결핵에 걸려 10년 넘게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절망과 고통이 삶을 짓눌렀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살아야 하겠다고 말입니다.
어려운 이들을 섬기는 성공회 신부로서 첫 걸음을 뗀 김성수 명예이사장은 1973년 지적장애인을 위한 성베드로 특수학교를 세우면서 장애인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시청 앞 성공회 성당에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끓여 판매한 금액을 한 푼 두 푼 모아 지은 학교의 교장으로 장애인의 교육을 위해 애썼습니다.
김성수 명예이사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는 장애인 학생들의 현실이 안타까워 선친이 물려준 강화도 땅에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을 열었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직업은 꼭 필요합니다. 우리마을 장애인들은 콩나물이 자라면 무게를 잰 다음 봉투에 알아서 척척 담는 도사들이에요. 콩나물을 팔아서 자신의 밥벌이를 하지요.”
2004년 푸르메재단이 창립할 때 김성수 명예이사장은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루고, 조그만 벽돌이 모여 거대한 성채를 이루듯 장애환자를 위한 아름다운 재활전문 병원을 건립할 때까지 뚜벅뚜벅 걸어가자”며 장애어린이와 가족들이 마음 편히 치료받을 수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푸르메재단 직원들과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병원 건립기금 마련을 호소하는 거리 모금에 나섰습니다. 교통사고 피해보상금 10억 원을 내놓은 황혜경 기부자와 자신보다 어려운 장애인을 도와달라며 재산을 기부한 장애인 부부를 통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헤쳐 나갈 힘을 얻었습니다.
늘 직원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은 거창한 사업이 아니라 남을 위한 공익적 앵벌이’라며 거절당해도 낙담하지 말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동전을 모아온 고사리손부터 거액을 기부한 개인과 기업 등 장애어린이의 아픔에 공감한 시민 1만 명의 정성을 모아 국내 유일의 어린이재활병원을 세웠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하루에 500명 이상의 장애어린이들이 재활치료를 받으러 오는 모습을 지켜봐 온 김성수 명예이사장은 병원 임직원들에게 당부합니다. “어린이재활병원의 존재 이유는 한 가정에 평화를 주기 위함이지요. 한 가정이 평화로우면 나라가 평화로워요.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장애어린이들을 내 가족처럼 치료하고 보듬어 주세요.”
그러면서 웨스터민스터 사원 지하에 있는 성공회 주교의 묘비명을 낭독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가졌었다. (...)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내 가족이 변화되고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세상도 변화되었을지!”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깨달음. 장애어린이와 가족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일하는 마음가짐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매 순간 모든 정성을 다할 때 여러분의 헌신과 노고를 격려하는 박수 소리도 커질 테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친절한 병원이 될 거예요. 자부심을 가지세요!”
구순이 내일모레인 김성수 명예이사장이 남은 생애 이루고픈 꿈은 우리마을에서 함께 늙어가는 장애인의 노후를 위한 양로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장애자녀 부모의 소원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잖아요. 우리나라에는 발달장애인 노인을 위한 양로원이 하나 없어요. 장애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죠.”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는 장애인 제자와 친구들이 있는 강화도 우리마을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김성수 명예이사장. 평생 한결같은 모습으로 따뜻한 품을 내어준 ‘할아버지’의 당부를 오래도록 기억해야겠습니다.
*글= 정담빈 선임간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김성수 명예이사장 제공, 푸르메재단 DB, 정담빈 선임간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