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행복의 발견
SPC 행복한 가족 제주여행 후기
<김강빈 가족에게 온 편지>
"여보, 병원에서 뭐래? 딸 이래? 아...들이래?"
"오빠... 선생님이 아기 다리 사이로 뭐가 좀 보이는 것 같다고... 아들 이래"
"진짜야? 확실해? 확실한거지? 아호!! 둘째는 아들이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2016년 05월 20일, 남편을 아주 많이 닮은 3.7kg의 사내아기가 태어났습니다. 38주를 꽉 채우고, 건강하게 태어난 이 아이는 엄마, 아빠의 세상 전부였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꿀럭, 꿀럭 힘주어 젖 빠는 모습만 보아도 엄마는 흐뭇해 젖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루 종일 미역국만 들이마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가 50일 쯤 되었을 때 밤새 잠도 못자고, 자지러지게 울다가 깜짝깜짝 놀라며 또 자지러지게 울다, 놀래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새벽에 입술이 시퍼래지면서 무호흡증으로 긴급히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엄마와 아빠는 아기가 밤새 경기를 하며 힘겨워했던 것도 모른 채 의사 선생님만 붙잡고 우리 아이 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아 뇌경색을 수반한 급성 모야모야병, 뇌병변 장애 1급 김강빈의 이야기입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일 년 동안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입심이 좋았던 아이는 뇌 손상으로 물 한 방울도 스스로 넘길 수 없는 연하장애가 생겨버렸고, 모든 음식은 콧줄을 통해서만 위로 전달되었습니다.
하루종일 누워만 있다 보니 장이 뒤틀려 배가 아플 땐, 울 힘조차 없어 온 몸으로 부들부들 떨며 울부짖는 아이를 끌어안고 함께 울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아이 앞에서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 뜨기가 참 고역스러웠습니다. 남편은 우리가 지쳐 나가떨어지면 안 된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넋이 나가있는 저를 붙들어주었습니다.
일 년 동안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을 하던 날, 강빈이는 병보다 장애를 가진 거라며 장애는 낫게 할 수 없는 거라고, 사는 동안 최대한 더 심해지지 않게 지속적으로 치료하며 관리해주는 게 최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우리 강빈이가 태어나서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강빈이는 또래 아이들처럼 뒤집지도, 배밀이도, 기지도, 앉지도, 걷지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목도 제대로 가누질 못했고 우리 아이가 평생 누워서만 지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퇴원과 동시에 집에서 제일 가까운 소아재활병원에 대기를 걸어놓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운좋게도 금방 대기 순서가 되어 강빈이는 돌 무렵부터 본격적인 재활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강빈이는 몸에 조금씩 힘도 생기기 시작했고, 눈 마주침도 생기고, 이제는 ‘엄마’라는 소리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똑소리나게 어여쁜 딸 혜빈이와 살인미소천사 강빈이라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 이 두 아이는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 합니다. 물론 뇌병변 장애로 성장이 느려져 이제 목을 조금 가누기 시작한 강빈이와 혜빈이는 싸움이 되질 않습니다. 오로지 큰 아이의 귀여운 투정입니다.
"엄마는 왜 강빈이만 안아줘?"
"엄마는 내가 안보이나봐, 강빈이만 예뻐하고"
매일 매순간 강빈이를 안고 밥을 먹이고. 강빈이와 함께 치료를 다니고, 강빈이의 강직된 팔과 다리를 주무르는 모습이 큰 아이 눈에는 동생만 예뻐하는 것처럼 보이나 봅니다. 강빈이가 잘 때 큰 아이만 몰래 구석에 데리고 가 "엄마는 우리 혜빈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속삭여주면 그때서야 조금 마음이 풀려 저녁엔 강빈이 간식도 챙겨주는 참 마음 착한 예쁜 누나입니다. 이렇게 착하고 예쁜 딸에게 장애가 있는 동생을 어떻게 설명 해주어야 할지 참 어렵습니다.
언젠가 장애인에 관한 글을 읽다가 댓글에 ‘장애인은 세금만 축내는 벌레‘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우리 강빈이도 잘 키워서 이 사회 속에서 어엿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멋진 어른으로 키워내겠다고요.
강빈이의 장애를 받아들인 후 단 하루도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저에게, 아니 우리 부부에게 가슴 떨리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spc 행복한 여행에 우리 가족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였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했지만 그 마음도 잠시, 여행 중 우리 강빈이가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지? 모기에 많이 물리면 어쩌지? 뇌혈관이 약한데 기압차에 비행기는 무리겠지... 이런 걱정들과 생각에 여행은 포기해야하는 걸까?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행 당일 아침까지도 근심 반, 걱정 반의 무거운 마음으로 여행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공항에서 만난 푸르메재단의 김연규 간사님과 여러 선생님들, spc 소속 대리님과, 푸르메재활센터 의사선생님까지 모두 따뜻하게 반겨주시며 우리 가족의 첫 도전과 첫 발걸음을 응원해주시는 것만 같아 참 편하고 좋았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해 맞이한 첫 식사는 정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들과 외식 한번 제대로 할 여유조차 없었는데 이렇게 잘 차려진 음식을 맞이하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남편도 저와 마음이 같았는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수고했어’, ‘당신도 수고했어’라는 말로 모든 말을 대신했습니다. 큰 아이도 들떠 맛있는 음식 앞에 연신 포즈를 취하면 셔터를 눌러달라고 요청을 해옵니다.
아늑했던 숙소에서는 밤새 바비큐 파티가 열렸습니다, 리조트 내에 울려퍼지는 음악소리에 맞춰 큰 아이의 춤 자랑과 강빈이의 웃음소리는 제주도의 밤을 더욱 더 깊어가게 해주었습니다. 다음 날 서둘러 리조트 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며 잠을 깨우고 서둘러 간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는 남편이 제일 신났습니다. 5살 밖에 안 된 딸에게 컴퓨터의 역사를 알려주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참 우스웠습니다. 휴애리에서는 신혼여행 때의 풋풋한 기억을 되살려 남편과 오랜만에 두 손을 꼭 잡고 사진도 한 장 남겼습니다.
단연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 곳은 바로 한화아쿠아플라넷에 핑크퐁 상어송이 흘러나오는 체험관과 상어미끄럼틀이 있던 놀이터, 그리고 오션 아레나 공연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평범한 다른 가족들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참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강빈이를 후원해주시고 우리 가족에게 꿈만 같은 시간을 선물로 주신 spc 임직원분들과 푸르메재단 간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글= 김강빈 어린이 가족
*사진= 푸르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