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공동체
[국내외 착한 작업공동체 견학] 아이쿱생협 구례자연드림파크
전주를 지나 순천완주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드넓은 회색빛 겨울 들판이 어느덧 사라졌다. 들판이 끝난 자리에는 지리산 자락이 시작되는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산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절의 고장, 춘향의 남원’이라고 쓰인 안내판을 지나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하자 붉은 지붕을 가진 구례자연드림파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쿱(icoop)생협은 ‘내가 주체가 되어(I) 이웃과 지구를 살리는 윤리적인 소비를 하자’는 취지로(Co-operative) 설립됐다고 한다.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만들고 충청도 이남에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2012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세워진 것이 구례자연드림파크이다. 구례시가 이곳에 상하수도, 전력 등 관계시설을 완비한 농공단지를 조성했지만 입주할 기업이 없어 시름에 잠겨있던 중, 남부지방에 생산공장과 물류창고를 물색하던 아이쿱생협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고 한다.
23만 7,000명의 조합원 중 3만 5,000명이 100만 원씩 350억 원을 출자하고, 사업 참여를 원하는 15개 법인에서도 320억 원을 출자하는 등 총 679억 원이 사업에 투자됐다. 현재 4만 5,000평의 부지 위에 19개 공방이 가동하고 있지만 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인근 1만 5000평에 제2 파크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자연드림파크는 2014년 전분공방을 시작으로 도정, 우유, 맥주, 만두, 빵 공방을 세우면서 현재는 480명이 직원들이 450개 품목, 1,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역 활성화 정책에 따라 직원들의 대부분이 구례주민들이다. 아이쿱생협은 서울경기와 강원 등 중부지방의 생산 공급을 위해서 2014년부터 충북 괴산에 7만평을 조성해 음료와 쌀도정, 육가공, 압착유 공방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여기저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구례로 시집왔는지 외국인 여성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 일행은 투어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참가비는 1인당 6,000원. 견학은 쌀도정, 라면, 만두, 베이커리, 맥주 생산과정을 둘러보면서 과자와 간단한 기념품도 만들 수 있다. 투어에 참여한 사람은 겨울철 평일이라 우리 일행 6명이 전부였다.
투어가 시작된 장소는 자연드림시네마. ‘더킹’, ‘공조’, ‘모아나’, ‘딥워터 호라이즌’ 등 6개 영화가 상영 중이다. 국산옥수수로 만든 팝콘을 팔고 있다. 이곳뿐 아니라 모든 매장과 공방에서는 유기농제품과 우리밀, 공정무역커피를 사용한다고. 영화관은 직원들과 인근 주민들이 주 고객으로 주중에는 6,000원, 주말에는 7,000원을 받는 150석 규모의 개봉관이다.
우리 안내를 맡은 분은 순천 아이쿱생협 이사인 송은주 씨였다. 송 씨는 전문 안내 가이드대신 인근 지역 아이쿱생협 간부들이 돌아가면서 투어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씨에 따르면 지역주민과 주부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이쿱생협 생활의 철학이라고 한다. 방문객이 쿠키와 피자, 소시지, 쑥부쟁이떡 등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조물락공방을 들렀다. 여름 같으면 유치원생들이 북적일 강당에 테이블만 덩그렇게 놓여있고 직원 세 사람이 주방기구를 대청소하고 있다. 겨울이라 단체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전남교육청에서는 매년 각급 학교에 견학을 권장하기 때문에 봄이 되면 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로 꽉 찰 거라고 한다. 최근에는 가족 중심의 관광객들을 비롯해 멀리 미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촬영팀까지 찾으면서 방문객이 연간 1만 5,000명을 넘고 있다.
라면 공방. 왜 공장이라고 하지 않고 공방이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송 씨는 공방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혼과 정성이 담긴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라서 공방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이곳에서는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라면의 70여 개 첨가물 중 30개 줄여 유기농라면, 감자라면, 사골라면 등 10여 종을 생산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생산된 상품은 3주 안에 소비자들이 사용하도록 유통기간을 3주로 잡고 있다.
도정공방.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철제 설비의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과한 쌀이 자동으로 봉투에 담기고 있었다. 공방 두 개동에서 일하는 사람은 단 2명. 한 사람은 도정된 쌀 봉투를 옮기고 있고 다른 사람은 도정과정에 이상이 없는지 컴퓨터로 모니터를 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벼이삭을 옮겨서 포장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일했을 텐데 컴퓨터와 자동화로 불과 2명이 아이쿱생협 쌀뿐 아니라 구례군에서 위탁한 도정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큰 회사의 홍보관 같이 산뜻하게 만들어진 로비를 지나자 면발을 뽑아내서 기름에 삶고 건조시켜서 포장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유리창을 통해 관찰할 수 있다. 공장이 설계할 때부터 견학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되어서 한 시간에 최고 4,000개의 라면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10명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만두공방과 베이커리공방 견학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인 맥주공방에 자리한 비어락하우스에 들렀다. 안쪽은 하루 1.5톤을 생산할 수 있는 맥주공장이고 바깥쪽에는 맥주홀이 마련돼 있다. 우리가 낸 견학비 6,000원 안에 이곳에서 생산된 맥주 반잔과 기념품 라면 3개의 비용이 포함돼 있다. 시음용으로 나온 것이 필스너 맥주. 향이 깊고 쓴 맛이 나는 것이 제대로 숙성된 느낌이다. 기술자에게 물으니 독일 밤베르크에서 수입한 맥주보리를 배합해 만든다고 한다. 발효숙성 탱크와 저장탱크의 규모는 총 29톤. 지금은 자연드림파크를 비롯해 인근 몇 곳에 알미늄 통인 캐그의 형태로 납품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병입판매가 목표라고 한다.
이 정도 맛이라면 OB나 하이트 같이 균일화된 맛을 생산하는 대형맥주회사에 도전해볼만 한 것 같다. 공장견학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영화관 뒤편으로 가족호텔을 짓는 모습이 보인다.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게스트하우스 휴센터와 선술집 루, 사우나 등이 붐빈다고 한다. 황량할 것 같았던 구례군에 자연드림파크가 들어서면서 지역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일하는 사람과 소비자들이 공동 출자를 하고, 회사들도 참여한 형태를 사회복지에 적용할 수 없을까. 장애청년 가족과 사회공헌사업에 관심이 있는 기업,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시민들이 힘을 합해 장애청년들이 평생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세우는 일말이다. 구례자연드림파크 같은 곳이 지하철과 통근버스로 가능한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 인근에 세워진다면 어떨까. 장애인이 생산해서가 아니라 품질이 우수하고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한 제품이기 때문에 구입할 가치가 있다면, 그런 작업공동체에 장애청년과 비장애인들과 어우러져 평생직장으로 일할 수 있다면 그게 선진국이 아닐까 한다.
*글= 백경학 상임이사 (푸르메재단)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