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가는 가을소풍 - 청각장애 청소년 토요문화체험
매월 넷째 주 토요일은 종로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청각장애 청소년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입니다. 대학생과 청각장애 청소년이 함께 진로를 찾아보고 고민도 해결할 수 있는 멘토링 프로그램, ‘너와 나 같이(가치)찾기’에서 문화체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10월 넷째 주 토요일은 더 특별했습니다. ‘토요문화체험’ 활동에 친한 친구를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평소에 함께하고 싶던 친구나 형제를 초대해보세요.”
이 말을 들은 청각장애청소년들은 고심 끝에 초대할 사람을 정했습니다. 다른 치료실에서 만난 청각장애 친구, 함께할 기회가 없던 형제자매,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던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모인 스물다섯 명의 청소년들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택식물원으로 가을소풍을 떠났습니다.
▲ 식물원 해설사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는 참가자들. 설명을 듣고 나니 주위의 나무와 풀들이 하나하나 특별하게 보였다.
한택식물원은 관람이 가능한 약 7만 평의 ‘동원’과 식물자원 보호를 위해 개방하지 않는 약 13만 평의 ‘서원’으로 나뉩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미지의 숲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니 신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안개로 둘러싸인 색색의 숲은 완연한 가을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9천여 종의 식물과 35개의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진 작은 식물원으로 이루어져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식물원 해설사는 식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꽃과 빨갛게 익은 열매는 산새의 먹이가 되고 배설된 씨앗은 숲을 이룬다는 것부터 식물 하나하나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참가자들은 해설사와 수화통역을 해준 사회복지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잎을 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계수나무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참가자들 모두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뭇잎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하트모양을 닮은 계수나무 잎 뿐 아니라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잎사귀들이 참 특별하고 예뻐 보였습니다.
▲ 한택식물원의 상징 ‘바오밥나무’ 앞에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누군가는 ‘어린왕자’ 책 속으로 놀러왔다가 기념사진을 찍는 기분이라고 했다.
식물원에서 만난 수많은 식물 중에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단연 바오밥나무였습니다. “신이 실수로 나무를 거꾸로 심어서 뿌리가 하늘로 향해있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는 “우와 정말 그럴까?” 하며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에 살아남기 위해 나무 안에 물이 가득해 ‘물병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이야기에는 모두들 신기해했습니다. 나무줄기를 두드려보기도 하고 쓰다듬어보기도 했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나무를 살피는 참가자들은 저마다 머릿속에 재미있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식물원을 대표하는 꽃과 나무들이 그려져 있는 필통을 예쁘게 칠하고 조립해 나만의 필통을 만들었습니다.
식물원 관람이 끝난 후에는 나무조각으로 필통을 만들었습니다. 숲을 누비며 관람하던 때와는 다르게 저마다 자기 작품에 집중해 예쁘게 칠하고 조립했습니다. 맛있는 점심을 먹은 후에는 친구들끼리 작은 무리를 지어 식물원 곳곳에 숨겨진 스탬프를 찍어오는 미션도 진행했습니다. 가을 속으로 깊이 들어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건만, 누구랄 것도 없이 스탬프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바빴습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음소리는 한시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소풍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멘티의 친구로 함께 참여한 종민(가명)이는 “처음에 친구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거든요. 식물원이라니 지루할 것 같았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다음에 또 와도 되요?” 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꼭 함께하고 싶었던 친구와 추억을 만든 가을소풍은 어느 때보다 돌아오기 서운해 했습니다. 짧은 하루는 끝났지만 이날 함께한 인연과 추억은 계속될 것입니다.
*글,사진= 신정이 사회복지사 (종로장애인복지관 사회통합팀)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는 청각장애 청소년 토요문화체험이 진행됩니다. 주제별, 계절별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청각장애 청소년이면 사전 접수를 통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 문의 : 02-6395-7076 종로장애인복지관 신정이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