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동행을 약속하다
그림은 화가를 닮아 있습니다. 은은한 빛깔의 그림에선 웃음을 머금은 화가의 모습이 떠오르고 강렬한 색채로 뒤덮인 그림에서는 역동적인 화가의 열정을 엿보게 됩니다. 행복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듯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 있습니다. ‘행복’을 주제로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박정희 화백. 행복한 기운을 전하는 박 화백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푸르메재단에 걸린 그림 두 점
11월 4일 박정희 화백은 푸르메재단을 방문했습니다. 작품 ‘행복한 동행’ 50호 판매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박 화백과 푸르메재단의 소중한 인연은 두 아동문학가의 도움으로 맺어졌습니다. 아동문학가 유효진 선생님이 재단과 인연이 있는 아동문학가 임정진 선생님에게 박 화백의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임정진 선생님은 박 화백에게 푸르메재단과 작품이 잘 어울린다면서 기증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했습니다. 늘 어딘가에 작품을 기부하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재단에 그림이 걸리기까지 박 화백은 꼼꼼하게 준비했습니다. 인사동에서 열린 개인전을 시작하자마자 기부할 작품에 판매 완료를 알리는 빨간 딱지를 붙였습니다. “내가 기부하는 그림인만큼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을 주고 싶었다.”며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의 대표작을 미리 점찍어둔 것입니다. 전시회를 철수하던 날 제일 먼저 재단으로 달려가 작품을 걸었습니다. 푸르메재활센터의 개관을 기념해 2점의 작품을 기부한 박 화백.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그림은 센터를 이용하는 장애어린이와 가족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유년의 추억에서 건진 캔버스
박 화백의 그림에는 꽃과 나무 그리고 연못이 어우러진 풍경이 파랑, 초록, 분홍 등 다양한 색깔로 담겨 있습니다. 어릴 적 연못 앞에서 동요를 부르고 맘속에 시를 쓰며 “가슴 속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다.”는 그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자연을 벗 삼았던 행복한 유년시절의 추억을 화폭에 옮기고 있습니다.

‘당연히’ 미술을 전공했으리라 생각했지만 뜻밖의 이력이 있었습니다. 다른 분야를 전공한 그녀는 그림이 좋아 추상화가 故김인근 교수님 밑에서 12년 간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 때는 주로 추상작업을 해오며 교수님의 화풍에 큰 영향을 받은 시기였습니다. 그녀는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화풍을 추상작업을 통해 체득했고, 유년시절 가슴 속에서 완성한 수많은 캔버스는 현실의 캔버스로 옮겨져 그녀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행복한 동행’, ‘정원 이야기’,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연작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연작은 모두 ‘행복’을 의미하며 연결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걷고 싶다는 꿈. 많은 이들이 모여 자신이 만들어진다고 굳게 믿는 박 화백. 2007년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주변 사람들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잔치 벌이고 마음을 나누며 동행하는 꿈을 작품에 새깁니다.
다양한 색채와 기법으로 그리는 행복
풍성한 색감이 우러나는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먼저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립니다. 그런 다음 여러 번에 걸쳐 덧칠 작업을 합니다. 덧칠이 차곡차곡 쌓여 밑그림과 혼합되었을 때 아름다운 색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과 물감을 사용하는 아크릴화와는 달리 정통 유화(오일페인팅)는 덧칠하면 쉽게 마르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동시에 두세 개의 캔버스를 펼쳐 놓고 작업을 하곤 합니다.

다양한 색채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색은 파란색입니다. 파란색은 차가운 느낌을 주는데 웬일인지 그녀의 작품 속 파란색은 마음을 차분하고 편안하게 해줍니다. 어떤 분은 그녀를 ‘차가움을 가장 따뜻하게 그리는 화가’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어두웠던 마음의 그림자를 거둬내는 치유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박 화백은 붓과 나이프를 병행해 다양한 기법을 연출합니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울퉁불퉁하거나 거칠게 긁혀진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붓으로만 곱게 칠할 수도 있지만 그림에 입체감을 살려주기 위해 나이프로 긁거나 흘리고 찍는 등 다채로운 효과를 내려는 노력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진 입체감으로 인해 두터운 질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오랜 시간과 정성이 빚어낸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붓을 말리지 않는 화가
작업실에 작품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다작하는 ‘현역’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다른 화가가 한 점을 그릴 때 박화백은 서너 점을 그립니다. 외출했다 오면 피곤할 법도 한데 작업실로 돌아와 무려 7시간씩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왜 다작을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아무리 많이 그려도 그 중에서 좋은 그림 한 점 나오기 어렵다. 화가는 늘 붓을 말리면 안 된다.”는 그녀의 대답에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었습니다.
또 한 점의 그림을 약속하며
2015년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이 완공되면 진료실 벽면에는 박정희 화백의 그림 한 점이 걸릴 것입니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닮은 밝은 그림을 부탁드렸기 때문입니다. 200호나 되는 큰 그림을 그리려면 작업 과정이 만만치 않을 텐데 박 화백은 “늘 마음 속으로 구상하고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오히려 저희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림으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다독여지리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아이들이 병원을 미술관으로 여기며 아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 화백은 인터뷰 내내 ‘약속’을 언급했습니다. 그 누구와의 약속도 아닌 자신과의 약속. 봉사를 하며 예술활동을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어떤 상황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마음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품을 기부한 날을 시작으로 꾸준히 재단을 찾고 있습니다. “나와의 약속을 계속 지키는 한 푸르메재단과의 관계도 변함없이 이어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녀의 두 눈이 반짝입니다.
좋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은 좋은 향이 나오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박정희 화백은 늘 그래왔듯이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로 행복한 기운을 전할 것입니다. 그녀를 닮은 그림도 오래도록 좋은 향기를 머금고 곁에 머물 것입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홍보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