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 아빠가 달리는 이유

<10월의 푸르메 기획강연 공公유有 후기>


 


태어나자 1년 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은총이. 뇌가 돌처럼 굳어가는 스터지웨버증후군을 포함한 6가지 불치병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심한 경기로 하루에 수십 번 몸을 떨어야 했고, 말하지도 걷지도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랬던 아이가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에도 가고 뽀로로에 열광하는 천진난만한 11살이 되었습니다.


이런 은총이 옆에는 은총이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은총이 엄마와 아빠가 있습니다. 장애아를 둔 부모로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그들.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는 은총이 가족 이야기에서 기적을 봅니다. 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저는 은총이 아빠입니다


자신의 이름보다 ‘은총이 아빠’로 불리는 게 친숙한 박지훈 씨. 푸르메 기획강연 ‘공유’를 위해 빗길을 뚫고 군산에서 한 걸음에 달려왔습니다. 그을린 피부에 검은색 정장을 빼입은 박지훈 씨는 운동으로 단단해진 멋진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세 번째 기획강연 공유에 은총이 아빠 박지훈 씨를 모셨습니다.
세 번째 기획강연 공유에 은총이 아빠 박지훈 씨를 모셨습니다.

그런 박지훈 씨가 대뜸 자신이 멍청하다고 했습니다. 멍청하게 생긴데다가 멍청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멍청함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좋은 직장을 다니던 그의 꿈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부자로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더 화목한 가정을 바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은총이가 태어나면서 이 모든 것들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절망하더라도 울지 말자는 약속


2003년 10월 3일 은총이가 세상의 빛을 보던 날. 아빠가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아이를 보자 뭔가 이상했습니다.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붉었기 때문입니다.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서둘러 익산에 있는 큰 병원으로 입원시켰습니다. 검사란 검사는 다 받았지만 은총이의 정확한 병명을 알지 못했습니다. 1년 이상을 못 버틸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상태를 모른 채 퇴원했던 은총이 엄마가 뒤늦게 만난 아들을 보고 처음 한 말은 “우리 아들 예쁘다...정말 예쁘다”였습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아내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은총이의 출생 이후 절망에 빠져 있던 그는 그 순간 처음으로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은총이가 100일을 넘긴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손과 발을 떨며 경기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2~3분을 넘지 않는 열성경기가 은총이한테는 계속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심한 경기를 동반하고 뇌가 서서히 굳어가는 스터지웨버증후군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1년을 못 살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도 했습니다. 은총이 아빠와 엄마는 모든 걸 젖혀두고 아픈 은총이를 보살폈습니다.


박지훈 씨를 아는 동네 주민에서부터 평소 은총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기부자까지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박지훈 씨를 아는 동네 주민에서부터 평소 은총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기부자까지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첫 번째 생일이 찾아 왔습니다. 멋지고 행복한 돌잔치를 열어주고 싶었지만 여느 때보다 심한 경기를 하며 중환자실에 입원한 은총이. 고통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은총이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워 화장실에 주저앉아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여자화장실에서 서럽게 우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은총이 엄마였습니다. 그 후로 부부는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은총이 앞에서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절대 울지 말자고. 그 약속은 10년째 변함없이 잘 지켜오고 있습니다.


뇌수술로 다시 찾은 희망


잦은 경기로 복용한 약에 면역이 생긴 은총이를 재우기 위해서는 수술에 사용하는 마취약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천을 받고 상계백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망가져가는 오른쪽 뇌 제거 수술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비싼 수술비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고민하는 걸 보고 의사 선생님은 일단 수술을 할 테니까 밤에 몰래 도망가라는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부부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아침 7시에 시작해 밤 12시가 넘어서야 끝난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습니다.


17시간에 걸친 뇌수술을 마치고 잠이 든 은총이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해집니다.
17시간에 걸친 뇌수술을 마치고 잠이 든 은총이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해집니다.

철인3종경기대회도 아침 7시에 시작해 밤 12시 전에 도착해야 철인 칭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는데, 은총이도 철인만큼 힘든 시간을 이겨 냈습니다.


세상의 편견에 도전장을 내밀다


은총이가 11년을 사는 동안 아빠와 엄마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세상의 시선이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은총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고 모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모든 시선이 은총이에게 쏠렸습니다. 아이를 둔 엄마들은 행여 병이 옮을까봐 슬금슬금 피하고 아이들은 괴물이라고 외치며 도망갔습니다. 편견 어린 시선은 상처가 되어 은총이 가족을 집 안에 가뒀습니다. 극심한 우울증 속에서 자꾸 나쁜 생각이 머리를 메웠습니다.


그런 아빠의 손을 은총이가 다가와 잡아줬다고 합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은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닥을 찍고서야 등 뒤에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박지훈 씨. 은총이의 그 작은 손을 잡고 ‘은총이 아빠’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철인3종 경기, 너는 내 운명


은총이 엄마에게 역할을 바꾸자는 제안을 합니다. 중증장애아들과 함께 철인3종을 뛰는 미국의 팀호이트처럼 철인3종 경기에 나가 은총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불가피하게 역할을 바꾸게 되면서 은총이 엄마는 가장, 아빠는 주부로 변신했습니다. 그러면서 박지훈 씨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러닝머신을 타고 동네 수영장을 다니며 1년 동안 체력을 키웠습니다.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로서는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은총이는 아빠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철인3종 경기를 뜁니다. ‘뉴발란스 NB레이스’를 마친 후 은총이의 둘도 없는 삼촌인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션 씨와 함께.
은총이는 아빠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철인3종 경기를 뜁니다. ‘뉴발란스 NB레이스’를 마친 후 은총이의 둘도 없는 삼촌인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션 씨와 함께.

철인3종 경기는 수영과 사이클 그리고 마라톤을 연속으로 하는 극한의 스포츠로 성인 남성도 세 가지를 하려면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닙니다. 은총이 아빠는 은총이를 태운 보트를 허리에 묶고 수영을 하고 트레일러와 연결한 자전거 페달을 밟고 휠체어를 밀며 꼬박 4시간 넘게 달려야 했습니다. 은총이 부자가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도록 대회에 참여한 다른 선수들은 보디가드처럼 옆에서 달리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리곤 골인 지점에서 은총이와 은총이 아빠더러 먼저 가라면서 뒤로 물러섰습니다. 은총이는 1등, 아빠는 2등을 했습니다. 그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코끝이 찡해진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는 꼴찌를 도맡아 하고 있지만 아빠의 마음속에서는 늘 은총이가 1등입니다. 해마다 철인3종 경기대회를 완주하고 있는 부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기적을 나누는 사람


KBS <인간극장>을 비롯한 여러 방송에도 출연했고 <우리 은총이> 책을 출간했습니다. 고정욱 작가가 쓴 동화책 <달려라 은총아>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 해 푸르메재단 토크콘서트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은총이 이름을 내건 철인3종경기대회도 엽니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션 씨와 이지선 씨를 비롯한 수많은 ‘이모’와 ‘삼촌’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그는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책의 인세와 철인3종경기대회의 수익금을 어린이재활병원 건립기금으로 기부하는 멋진 사람입니다.


100만 명의 은총이를 품고 달리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삶을 사는 은총이 아빠를 통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삶을 사는 은총이 아빠를 통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의 꿈은 무엇일까요? 은총이가 당당히 살아가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 은총이처럼 몸이 아픈 100만 명의 아이들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은총이 아빠의 달리기는 오늘도 계속 됩니다.



푸르메재단 기획강연 공共유有는 2013년 8월부터 매월 두 번째 화요일 다양한 주제로 열립니다. 기부자들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을 이어나가는 인문강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홍보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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