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자의 좌충우돌 철인 도전기
남자1호(션)
본명 노승환(41), 가수 지누션의 “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연기자 정혜영과 결혼해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연예계 대표 잉꼬커플로 꼽히며 다양한 기부활동으로 ‘기부천사 부부’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행으로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그는 이번에도 누군가를 위해 ‘철’없는 도전을 감행했다.
남자2호(박지훈)
본명 박지훈(38),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은총이 아빠’로 부른다. 희귀난치병을 가진 박은총 군의 아버지로 은총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은총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은총이만을 위해 뛰던 그가 이번에는 또 다른 은총이들을 돕기 위해 무척이나 ‘철’없는 일을 벌였다.
남자3호(박은총)
본명 박은총(10), 3개의 희귀난치병과 6개의 불치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린 나이임에도 “인간극장”, “시사매거진 2580”등 굵직한 방송에 출현했고, 본인의 이름을 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한 나름 유명인사다. “좋다”, “싫다”의 표현이 확실한 차도남(차가운 도시남자)으로 그의 주변은 늘 이모팬들로 들끓는다. 뽀로로를 보기 위해 그 어렵다던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작동원리를 스스로 터득한 그는 종종 엄마, 아빠보다 뽀로로를 선택하는 ‘철’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지난 10월 14일 일요일 오전 7시, 늘 조용하던 군산 비응항 일대가 웬일로 북적였습니다. 거리마다 “2012 군산새만금철인3종경기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꼈고, 눈에 띄는 복장을 한 채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남자2호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남자2호는 이곳, 저곳을 누비며 분주하게 무언가를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곧이어 남자3호가 휠체어를 탄 채 등장했습니다. 왕자님 포스로 등장한 남자3호는 뽀로로 마니아답게 한 손에 스마트폰을 꼭 쥐고 뽀로로 시청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어딘가에서 빛이 비치더니 남자1호가 후광을 안고 등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그는 별 다른 동요 없이 묵묵히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사실 이번 ‘철인3종경기대회’는 남자2호가 남자3호를 위해, 정확히 남자3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장애어린이를 돕기 위해 스스로 기획한 대회입니다. 대회의 참가비를 모아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기부하고자 군산시를 설득해 어렵사리 준비한 것입니다. 남자2호의 뜻에 동참하기 위해 남자1호도 무작정 따라 나섰습니다. 철없는 남자1,2,3호의 유쾌하고, 가슴 벅찬 철인 도전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도전종목은 수영이었습니다. 매서운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속 1.5km를 1시간 내 완주해야 합니다. 철인경기에 처음 도전하는 남자1호는 연습 때부터 수영이 걱정이었습니다. 바다 수영은 처음이었고, 아무리 연습해도 늘지 않아 가장 자신 없는 종목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록보다는 시간 내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호각소리와 함께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남자2호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남자3호를 노란보트에 태우고, 보트에 줄을 매어 본인의 어깨 끈에 묶었습니다. 혼자 헤엄치기도 벅찬 바다를 보트까지 끌며 헤쳐 나가야합니다. 호각이 울리자 그도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었습니다. 목이 터져라 남자 1,2,3호를 응원하던 목소리들은 그들이 바다 속으로 뛰어들자 이내 잦아들었습니다. 그 씩씩하던 응원소리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훌쩍이는 흐느낌이 방파제를 가득 채웠습니다. 순간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남자3호를 향한 남자2호의 애끓는 부정, 그리고 남자2호를 위한 남자1호의 뜨거운 우정.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도전을 지켜보는 내내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이 전해졌습니다.
40분이 경과하자 남자3호를 태운 노란보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그들을 반겼지만, 남자2호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습니다. 그는 수영을 마치고도 다음 종목인 사이클을 시작하지 못하고, 계속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자신을 위해 처음으로 경기에 도전한 남자1호가 걱정되어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모든 참가자가 뭍으로 올라왔을 때, 멀리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마지막 참가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남자1호였습니다. 남자1호는 느리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꼴찌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제한시간인 1시간 내에 수영을 마쳤습니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620"] 지친 남자1호의 모습[/caption]기진맥진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모습으로 바다를 헤쳐 나온 남자1호는 자전거를 집어타고, 다시 힘을 내어 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사이클이 취미이자 특기인 남자1호의 얼굴에는 이내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사이클에서 빛을 발하며 1시간20분 내에 사이클 종목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와 달리 남자2호에게는 40km를 내달리는 사이클이 복병이었습니다. 오롯이 두 사람의 무게를 얹고 페달을 밟아야 하는 그에게 사이클은 언제나 가장 큰 난관이었습니다. 맞바람이 몰아칠 경우, 바람의 무게까지 버텨내며 달려야하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사이클은 남자2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이 마지막 종목인 마라톤으로 갈아타고, 결승선을 통과한 참가자가 나타났을 때에도 남자2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여성 참가자의 사고 소식에 혹시나 남자2호와 3호에게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모두들 마음을 졸이고 있을 즈음, 멀리서 힘겹게 페달을 밟으며 달려오는 남자2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땀으로 범벅된 얼굴에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지만 신기하게도 남자2호와 3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걱정을 한방에 날려버릴 환하고 밝은 미소였습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신나 웃고 있었을까요?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620"] 힘들지만 웃고 있는 남자2호의 사이클 모습[/caption]마지막 종목은 죽음의 마라톤이었습니다. 수영과 사이클로 녹초가 되어 몸조차 가눌 수 없는 참가자들에게 10km 마라톤은 실로 잔인한 코스입니다. 3시간동안 물장구치고, 페달을 밟아대던 두 다리로 이제는 온 몸을 지탱하며 달려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때쯤이면 응원하는 사람들도 참가자와 함께 합니다. 체력이 되는 사람은 레일 밖에서 달리고, 체력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목청껏 “화이팅”을 외칩니다. 서있는 공간은 달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의 응원이 힘이 되었는지 남자1호가 막판 스퍼트를 올렸습니다. 결승선 가까이 그가 다가오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뛰기 시작했습니다. 남자2,3호를 향한 그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그를 응원했습니다. 남자1호는 첫 도전에 3시간 2분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이라 일컬어지는 철인3종 경기를 마친 남자1호는 남자2,3호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에 무척이나 행복해보였습니다.
이렇게 하나 둘, 모든 참가자들이 마라톤을 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단 한 팀, 남자2,3호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대회시간인 3시간30분이 지났고, 전광판의 시계도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고, 힘겹게 경기를 마친 선수들마저 다시 결승선에 돌아와 섰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조용히 한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더 이상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남자2,3호가 아무 탈 없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무사히 완주하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두 개의 점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다시 환호했습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3호를 태운 휠체어를 밀며 달려오는 남자2호의 모습에서 이 대회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혼자 몸으로도 힘겨운 이 대회를, 아픈 아들을 데리고 헤엄치고, 구르고, 달리는 아비의 마음, 그렇게라도 남자3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 남자2호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땅의 모든 남자3호들을 위해 달리는 남자2호의 뜨거운 가슴은 그렇게 모두를 감동시켰습니다.
철없던 남자1,2,3호는 어느새 철인1,2,3호가 되어 있었습니다.
백 마디 말보다 값진 세 남자의 좌충우돌 철인도전기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앞으로 펼쳐질 철인 삼총사의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 땅의 철인3호들을 위한 철인1호와 2호의 눈물겨운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쭈욱~
철인 도전 뒷이야기
철인1호(션 씨)는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대로 1m당 1000원씩 총5150만원을, 철인2호(박지훈 씨)는 대회 참가비인 1050만원을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푸르메재단에 기부했습니다.
철인3호(박은총 군)는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아빠보다는 뽀로로”를 외치며 하루하루 진정한 시크남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 철인3종 경기에 참가해 달렸던 거리 1m마다 1000원씩 5150만원을 기부한 홍보대사 션(왼쪽)
*글/사진=백해림 모금사업팀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