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외고에 울려 퍼진 ‘희망의 이야기, 감동의 연주’
장애인 예술가와 명사들이 일선 학교로 직접 찾아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문화소통 프로젝트-희망의 이야기, 감동의 연주’. 그 두번째 순서가 서울 중구 순화동 이화외국어고등학교(교장 장덕희)에서 진행됐습니다.
지난 9월 30일 오전 11시 이화외고 류관순 기념관. 실무를 맡은 교목 김형석 목사님은 자못 들뜬 표정으로 푸르메재단 담당자들을 맞았습니다. 피아노와 테이블 배치 등 꼼꼼하게 무대를 꾸미시면서 이날 행사가 학생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가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화외고에서 외부행사를 1시간 넘게 진행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수능시험이 임박해서 학생들이 바짝 긴장을 하고 있을텐데, 이번 행사가 학생들의 안목을 넓혀줄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의 이야기, 감동의 연주’는 방송작가 방귀희 선생님과 피아니스트 김경민 씨가 강연과 연주를 맡아주셨습니다.
이화외고는 전교생이 65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기념관 강당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숫자는 아니었지만, 학생들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열띤 자세로 강연과 연주에 집중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공부하느라 지쳐 피곤할 법도 한데 조는 학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본행사에 앞서 푸르메재단 정태영 기획팀장은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우리 미래를 짊어질 청년 학생 여러분께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아끼는 마음, 희망을 향해서 끊임없이 자세를 가다듬기를 바란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장덕희 교장선생님께서도 “장애의 문제란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다”면서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장애문제에 대해 넓고 깊은 이해를 갖출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드디어 행사 시작!!! 휠체어를 타고 강연에 나선 방귀희 선생님은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유쾌하게 강연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방귀희 씨는 자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로 강연을 풀어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휠체어를 타고 대학에 입학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이십니다.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 입학을 거절당하던 시절. 그 험난한 세월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향해 집요하게 노력한 것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웃음) 내가 장애를 갖고 있어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학교에 안 보내줄까 봐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수석입학 했어요. 대학교에 들어갈 때는 우리나라 어느 대학이든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 되었죠. 그런데 장애가 있다고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어요. 단 한군데 동국대학교 빼고요. 그래서 동국대학교를 들어가게 됐고 수석으로 졸업했죠. 제 이력서를 보면 수석이 두 번 들어가요.(웃음)”
방귀희 선생님은 또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면서 장애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이해를 촉구하셨습니다.
“우리는 흑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남녀의 성을 바꿀 수 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당신은 집에 가는 길에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은 여러분 학생들의 몫입니다.”
강연 도중에는 깜짝 이벤트로 점자가 몇 개로 이루어졌는지 즉석 퀴즈를 내시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번쩍 들고 ‘10개’, ‘3개’, ‘4개’… 나름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숫자들을 외쳤습니다. 정답은 몇 개일까요? 6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답을 맞춘 여학생을 직접 무대로 불러 자서전에 사인을 하신 뒤에 선물했습니다.
방귀희 선생님은 “이 강연을 통해 학생들이 내가 살아온 인생의 모습을 보고 한층 오기를 가지고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과 함께 강연을 끝마쳤습니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경민 씨를 학생들에게 소개해주셨습니다.
뇌성마비 피아니스트 김경민 씨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훤칠한 키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김경민 씨는 여학생들 앞에서 쑥스럽게 첫인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쥐어짜내듯 힘들게 인사말을 전하는 그 목소리에 학생들은 큰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습니다. 그리고 첫 곡으로 겨울연가 ost ‘My Memory’의 아름다운 선율이 강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청중들은 그 놀라운 연주솜씨에 숨을 죽이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김경민 씨는 뒤틀리는 몸을 가누며 온 힘을 다해 건반을 두드렸습니다.
연주도중에 건반을 잘못 눌러 음이 틀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유키 구라모토의 ‘Romance’, ‘Second Romance’, 베토벤의 ‘월광’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월광’을 연주하다가 손에 쥐가 올라 연주가 잠깐 멈춰지기도 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학생들의 격려에 강당이 떠나갈 듯 했습니다.
청중의 열정적인 응원 속에 연주를 마친 김경민 씨는 희망을 향해 포기하지 말고 노력할 것을 부탁하고 뜨거운 박수 속에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있을 수 만은 없었어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글,사진=푸르메재단 임승경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