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기적  ‘감동의 마라톤’

9월 28일 일요일 새벽 6시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Reichstag) 광장.

35회 베를린 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온 마라토너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선수들은 삼삼오오 모여 스트레칭도 하고 가볍게 달리면서 몸을 풀었습니다.

9월 말이면 독일에는 첫눈이 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아침은 서울 보다 제법 쌀쌀했습니다. 추위와

긴장감 때문인지 한 선수들의 표정이 딱딱했습니다.



이맘때 맑은 하늘을 구경하기 힘든 베를린이었지만 이날 만큼은 날씨도 우리편이었습니다. 독일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70m의 전승기념탑(Siegessaule)이 출발선이었습니다. 이곳 앞에 4만 5천명의 선수와 대회진행요원, 환호하는 시민이 모여 정말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선수들만의 마라톤이 아니라 온시민이 참여한 축제의 한마당이었습니다. 신나는 음악소리가 울려퍼지고 응원나온 시민들이 노래에 맞춰 춤추며 참가선수들을 응원했습니다. 선수중에도 춤추는 사람도 있었고 빨강가발, 비키니 차림으로 정말 카니발 축제 같았습니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지만 선수들의 출발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됐습니다. 30분이 넘어서자 선수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응원나온 시민들은 결승점이 있는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문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베를린국제마라톤은 우리에게 의미가 남다릅니다.


에쓰-오일의 후원을 받아 푸르메재단이 주최하고 있는 '감동의 마라톤'은 올해로 세번째. 1936년 일제하 故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던 그 현장입니다.


4만 5천명의 건각속에는 한국을 대표한 장애인선수 7명이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풀코스를 완주하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시각장애인 차승우, 차석수, 추순영, 지체장애인 서용수, 문영수,김형배, 발달장애인 이영석 씨가 그들입니다.



휠체어 마라톤의 서용수 씨와 문영수 씨가 출발선에 섰습니다. 환갑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용수씨는 젊은 선수들과 멋진 레이스를 펼쳤습니다. 문영수씨는 휠체어마라토너 중 가장 중증인 T52등급인데도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T52등급 중 풀코스 완주를 하는 사람은 국내에 3명 밖에 없다고 합니다.



시각장애인 차승우 씨는 푸르메재단 마라톤 홍보대사로서 제 몫을 톡톡히 했습니다. 그동안 국내 대회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푸르메재단을 알리기 위해 늘 고군분투 했던 그였습니다.


대회 참가전까지 차승우 씨는 국내 대회의 풀코스와 500Km 울트라 마라톤대회에서 무릎 연골에 문제가 생겨 고생했습니다. 차씨는 완주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완주 후에 들은 얘기지만 출발 전 진통제까지 먹었다고 합니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참가한 차석수 씨는 한치 앞을 볼 수 있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도우미가 없다면 마라톤이 불가능합니다. 차석수 씨 도우미를 울산 에쓰-오일 마라톤 동호회 소속 조병찬 씨는 차씨의 눈이 되어 42.195Km를 끝까지 그와 함께 달렸습니다.


여성시각장애인 추순영 씨는 이번 대회에 꽃이었습니다. 추씨는 이번 대회에서 4시간 10분대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놀라운 것은 추씨는 12Km 를 남겨놓고 도우미 없이 혼자 달렸린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추씨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골인했습니다. 추씨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골인지점에 ‘나를 맞아 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였다고 합니다.



대회 전날 샤로텐부르크(Charlotenburg) 궁전에서 올림픽스타디움까지 6Km까지 달리는 펀런(Fun Run)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손에 자기 나라 국기를 들거나 재미있는 옷을 입은 참가자들은 베를린 시민들과 함께 달렸습니다. 펀런은 말 그대로 '즐기면서 달리는 행사'입니다. 다음날을 위해 가볍게 몸을 풀기위해서입니다.



풍선을 든 사람, 유모차를 끌고 나온 사람, 휠체어를 끌고 가는 사람들, 어린이를 업은 사람, 연인과 함께 참가한 사람. 모두가 ‘펀런 그룹’이 되어 베를린 시내를 1시간 정도 달렸습니다.



뉴욕,보스턴,런던,시카고 마라톤대회와 함께 세계 5대 마라톤의 하나인 베를린 마라톤은 기록단축으로 유명합니다. 시전체의 1/3이 숲으로 이루어졌고 오르막길이 없을 정도로 평탄한 코스이기에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가 2시간 39분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습니다.


완주에 목표를 두었던 ‘감동의 마라톤’ 참가자들은 베를린시내에 응원 나온 시민들의 환호 속에서 달렸습니다.


군복무 중 지뢰를 밟아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한 김형배 씨는 의족을 착용한 채 끝까지 완주하는 감동의 드라마를 펼쳤습니다. 의족을 착용한 채로 10Km를 달린다는 인간 한계 그 이상입니다. 절단한 부위가 의족과 닿으면서 때론 피가 나고 심하게 통증이 오기 때문에 완주에는 그 만큼의 고통이 뒤따릅니다.


김씨의 아들인 세익이는 5시간이 넘도록 아버지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걱정했지만 아빠가 반드시 골인지점에 들어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김씨의 도우미인 동아일보 양종구 기자가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오자 세익이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해냈다. 드디어 완주했다." 고 아빠가 외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이들 부자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베를린 시민들의 응원도 단연 돋보였습니다. 마라톤 코스마다 가족과 이웃들이 나와 빵파레를 울리며 악기를 연주하고 참가한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번 ‘감동의 마라톤’에는 발달 장애인 이영석(20) 군도 참가했습니다. 영석군은 참가자들 중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보통 발달장애의 경우 옆에서 돌봐야 가능했지만 영석군은 참가한 스텝들과 4박 6일을 함께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영석군의 행동과 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 고생했지만 어느새 스텝들과 친하게 되었습니다. 일정을 마칠 때쯤에는 집중력도 커졌습니다.



마라톤 도우미로 함께한 울산마라톤동호회 소속 강진홍 씨와 박종석씨의 도움으로 이영석 씨도 무사히 완주를 했습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장애인 마라토너 모두가 힘겨운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42.195Km를끝까지 완주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30Km 지점이 가장 힘든 구간이라고 합니다. 이 구간은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나고 통증조차 무감각해진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선수들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굴하지 않고 완주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분들이 '감동의 마라톤'을 펼칠 지 기대됩니다.


*글=임상준 팀장

*사진= 백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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