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 강연회 <시는 인간에게 위안을 줍니다.>

“싯구 하나 하나가 모두 제 얘기인 것 같아요. 강연 내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어요.”

장애 아이를 둔 어머니는 강연이 끝난 후 자신이 살아온 삶의 뒤안길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푸르메재단은 13일 오전 10시 광화문에 위치한 KT 아트홀에서 시인 정호승 선생님의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서정적이고 감성을 어루만지는 시어로 영혼을 어루만졌던 정호승 선생님. 이번 강연은 푸르메재단이 장애가족과 일반인들의 휴식과 위안을 위해 마련한 릴레이 강연회의 첫 순서였습니다.



2005년부터 많은 강연회와 북콘서트를 진행해 온 정호승 선생님은 이날 14편의 시를 직접 낭송하고 중간중간 시로 된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정호승 선생님은 시를 쓰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고 명예나 권력을 좇으려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시를 쓰다 보면 스스로 위안을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술 한잔 中)고 쓰면서 시인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인생이 때론 냉정하다 못해 냉혹할지라도 원망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원망할 대상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울까요. 생각을 바꾸면 인생 또한 나에게 많은 술(여기서 술은 기쁨)을 사준다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가는 동안 누구나 넘어지고 때로는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관념이라고 말합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바닥에 대하여 中) 이처럼 실제로 우리가 밑바닥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 함정이고 관념입니다. 정말 바닥이 있냐고 묻는 다면 바닥은 없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물 위를 걸을 때 넘어질 것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인다면 즉, 그것을 하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이라는 물 속에 빠져 있어도 편안합니다. 내가 넘어진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

인가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다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 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내가 사랑하는 사람 中)에서 시인은 햇빛보다는 그늘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고통의 그늘 속에서, 눈물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햇빛만 있다면 결국 사막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시인은 얘기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시 ‘수선화’에서 인간을 본래 외로운 존재라고 규정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며 따라서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온몸이 부서지고 인생의 상처와 굴곡이 많을지라도, 우리가 보는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알 때 그 산산조각 난 인생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봄 길 中)고 시인은 말합니다. 자신이 인생의 주체이든 객체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이란 물위를 행복하고 걷고 때론 넘어지고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며, 그 자체가 삶이 나에게 주는 특별한 위안이라고 말합니다.



1시간 40분 동안 진행된 이번 강연회는 시와 음악이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시인과의 질의 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아름다운 시가 노래로 흘러나올 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경학 상임이사는 “오늘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며 푸르메재단은 앞으로 다양한 문학,예술가들을 모시고 바쁜 일상에 쫓기는 장애가족과 일반인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강연회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연회가 끝날 무렵, 어느덧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봄비가 우리의 마음을 촉촉히 적셨습니다. 장애 가족을 위해 이런 특별한 선물을 해주신 정호승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글=임상준 팀장

*사진=노용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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