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아동기부터 노년기까지 발달장애인 보듬는 캐나다

  • 아동기부터 노년기까지 발달장애인 보듬는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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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르메재단의 같이 살기]
    1952년 설립 발달장애인협회 지원으로 떠도는 불편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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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18   리치먼드=김지호 푸르메재단 경영기획팀 과장
DDA가 운영하는 ‘드롭인센터’에서 발달장애인들이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푸르메재단 제공

DDA가 운영하는 ‘드롭인센터’에서 발달장애인들이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푸르메재단 제공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고 중년과 노년을 지나 세상을 떠난다. 태어나고 자란 익숙한 곳에서 친숙한 사람들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발달장애인은 대부분 평생 여기저기를 떠돈다. 아동기에는 보육과 치료·교육을, 성인기에는 일과 여가를, 노년기에는 존엄한 돌봄을 제공하는 곳들이 섬처럼 흩어져 있는 탓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리치먼드에는 발달장애인의 생애를 지원하는 기관과 프로그램을 촘촘히 연결해 커다란 우산처럼 발달장애인의 인생을 품는 곳이 있다. 1952년 설립된 ‘발달장애인협회’(Developmental Disabilities Association·DDA)다. 공립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발달장애 자녀들의 교육권을 실현하고자 12개 가족의 부모들이 모여 시작한 이 작은 조직은 현재 직원 600여 명이 연간 1800여 명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지원하는 큰 조직으로 성장했다.

직원들, 산하 기관 순환하며 여러 업무 익혀

DDA의 진가는 협회 산하에 아동발달센터, 드롭인센터(Drop-in center), 직업 준비 기관, 사회적 기업, 그룹홈 등 한 사람의 생애주기에 필요한 거의 모든 지원 기관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 있다. 모든 지원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우산 조직(Umbrella Organization)’ 모델이다.

DDA에서 장애인은 자기 나이와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용 서비스를 변경하거나 여러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한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DDA의 통합보육센터에 다닌 아이는 자라서 DDA의 직업 준비 기관인 ‘잡 웨스트(Job West)’에서 직업 훈련을 받거나 사회적기업인 ‘스타웍스(Starworks)’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퇴근 후에는 DDA가 운영하는 그룹홈으로 귀가하거나, 드롭인센터에서 주간 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여가를 즐긴다.
 
여느 기관들이 주로 성인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CLBC’(Community Living BC: 성인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BC주 정부 기관)로부터 예산을 받아 움직이는 것과 달리, DDA는 CLBC를 포함해 교육, 아동복지, 고용 등 다양한 정부 부처의 예산을 받아 서비스를 기획한다. 그 덕에 생애에 걸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가 DDA라는 하나의 기관 안에서 매끄럽게 연결된다.
 

DDA 안에서 다양한 기관을 오갈 수 있는 것은 장애인 이용자만이 아니다. 직원들도 인사 순환 과정에서 DDA의 유연성을 강화한다. DDA 직원들은 드롭인센터에서 스타웍스로, 스타웍스에서 잡 웨스트로 이동하며 커리어를 이어간다. 이는 직원들로 하여금 기관 간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DDA가 제공하는 여러 서비스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자연스레 DDA의 다양한 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 질도 높아진다.

마크 주버뷜러 DDA 최고경영자(CEO)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전 부문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DDA는 체계적인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CLBC 지원금을 받는 기관의 표준 직원 교육 요건을 따르되, 자체 제작한 학습 콘텐츠와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활용해 철저한 성과 평가 및 피드백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잡 웨스트는 장애인이 취업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직업 준비 전문 기관이다. 발달장애인의 취업 과정을 ‘준비 → 매칭 → 현장 적응 → 장기 지원’ 흐름으로 설계해 지원한다. 장애인은 이곳에서 이력서 작성법을 배울 뿐 아니라,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하는 훈련을 받으며, 동료와 관계 맺는 기술을 습득한다. 장애인이 취업에 성공하면 직업 코치가 최대 3주간 직장에 동행해 현장 적응을 돕고 고용주와의 갈등을 중재하기도 한다.

발달장애인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작업 순서와 주의 사항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 매뉴얼. 푸르메재단 제공

발달장애인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작업 순서와 주의 사항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 매뉴얼. 푸르메재단 제공

‘사람에 일을 맞추는’ DDA 철학

잡 웨스트를 통해 일할 준비가 된 발달장애인은 DDA가 운영하는 스타웍스나 지역사회에 있는 일반 기업에 다닌다. 스타웍스에서 발달장애인은 분류, 조립, 포장 등 임가공 업무를 하는데, 온콜(On Call) 스케줄에 따라 일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컨디션에 따라 일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온콜이란 일거리가 있을 때는 직장에 나가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집에서 쉬거나 주간 활동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는 방식을 뜻한다. 스타웍스에서는 장기간 치료나 휴식이 필요하면 몇 개월 쉬었다가 원할 때 일터에 복귀할 수도 있다.
 
스타웍스는 단순한 업무라 해도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직무에 배치하고 장애인이 일하기 편한 환경을 조성한다. 가령 기억력이 좋고 꼼꼼한 성격을 가진 발달장애인에게는 밴쿠버공항에서 수거한 세계 각국 동전을 분류하는 일을 맡긴다. 철사를 똑같은 길이로 자르는 일을 하는 장애인에게는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보조 도구를 제작해 제공한다.
 

DDA에서 스타웍스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디앤 지바트 씨는 “지역 내 캔들 회사가 플라스틱 대롱 끝에 짧게 튀어나온 실 다발을 보이지 않게 잘라서 정리하는 작업을 스타웍스에 맡겼을 때 스타웍스의 비장애인 직원들은 어떤 도구를 써야 발달장애인이 안전하고 쉽게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며 “스타웍스 직원들이 다양한 방법을 시험해본 끝에 손톱깎이를 사용한 작업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일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일을 맞추는’ DDA의 철학이 엿보인다.

캐나다 발달장애인협회(DDA)가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스타웍스’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스타웍스는 발달장애인이 안전하고 쉽게 일할 수 있도록 장애인 맞춤형 작업대를 제작했다. 푸르메재단 제공

캐나다 발달장애인협회(DDA)가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스타웍스’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스타웍스는 발달장애인이 안전하고 쉽게 일할 수 있도록 장애인 맞춤형 작업대를 제작했다. 푸르메재단 제공

장애인 임종하면 추모 모임 마련
 
최근 DDA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주거지원 서비스(Residential Services)’라는 명칭을 ‘삶의 선택지(Living Options)’로 변경했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에게 맞는 삶의 형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뜻을 분명하게 내보인 것이다. DDA는 밴쿠버와 리치먼드에서 그룹홈 20개와 더불어 커뮤니티 아파트 프로그램(CAP: 장애인 당사자가 소유하거나 임차한 아파트에 살면서 생활 지원 서비스를 받는 형태), 홈셰어 프로그램(장애인이 다른 가정에 거주하는 형태)을 운영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고령화나 부모 사망에 따른 돌봄 공백 등 각자의 필요에 따라 CAP나 홈셰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다가 그룹홈으로 전환할 수 있다. 주거 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동안에는 지역보건국 간호팀의 의료 지원과 상담도 받을 수 있다.
 
DDA의 지원은 발달장애인이 임종하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CLBC의 지침과 지역보건국 간호팀의 안내에 따라 임종을 앞둔 그룹홈 거주자는 원하면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시설로 옮기지 않고 거주하던 그룹홈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 이때 DDA는 유가족과 연락은 물론, 장례 참석자 조정 등 장례를 주관하는 유가족을 돕는 역할도 수행한다. 또 그룹홈 내 거주자들과 직원이 사망자를 애도할 수 있도록 추모 모임을 마련한다. DDA는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제공 기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함께하는 진정한 ‘삶의 동반자’인 것이다.
 
DDA가 70년 넘게 축적해온 시스템의 힘은 대단했다. 고용, 주간 활동, 주거 등 다양한 삶의 요소가 한 개인을 중심으로 분절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푸르메재단 조사단은 “푸르메재단의 시스템을 서로 어떻게 연결해야 장애인에게 유기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푸르메재단은 DDA가 보여준 ‘통합’과 ‘연결’의 모습을 재단이 만들어갈 병원과 복지관, 일자리, 집에 잘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앞으로도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의 생애 과정을 통합하고 연결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새로운 장애인 지원 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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