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캐나다 ‘등록 장애인 저축 계좌’… 최대 약 7000만 원 정부 지원

“장애인이 적금하면 국가가 3배로 불려줍니다”

[푸르메재단의 같이 살기]
캐나다 ‘등록 장애인 저축 계좌’… 최대 약 7000만 원 정부 지원

2025-10-08  밴쿠버=김은영 종로장애인복지관장

1989년 캐나다로 이민 온 뒤 11년째 ‘등록 장애인 저축 계좌(RDSP)’에 저축하고 있는 로즈 씨(오른쪽)와 가족. 푸르메재단 제공 1989년 캐나다로 이민 온 뒤 11년째 ‘등록 장애인 저축 계좌(RDSP)’에 저축하고 있는
로즈 씨(오른쪽)와 가족. 푸르메재단 제공 

“저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이 혼자 남겨졌을 때를 생각하면 늘 불안해요. 하지만 RDSP (Registered Disability Savings Plan·등록 장애인 저축 계좌) 덕에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RDSP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아들이 혼자서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은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RDSP는 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경제적 안전망’이죠.”

장애인 저축액보다 정부 지원금이 더 많아

25년 전 캐나다로 이민한 유은경 씨(가명)의 말이다. 유 씨는 한국에서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판정을 받은 둘째 아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민을 택했다. 유 씨는 2010년부터 꾸준히 둘째 아들의 RDSP에 매달 500캐나다달러(약 50만 원)를 저축하고 있다. RDSP로 약 40만 캐나다달러(약 4억 원)를 만들어 아들에게 집을 마련해주는 게 최종 목표다. 훗날 아들이 혼자가 되더라도 큰돈을 계획적으로 쓸 수 있도록 유언장을 쓰고 신탁을 설정하는 등 안전장치도 마련해뒀다.

유 씨는 “RDSP는 부모가 사망한 뒤 남겨질 비장애 큰아들의 부담까지 덜어준다”며 RDSP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첫째 아들이 장애가 있는 동생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것은 너무 큰 부담이잖아요. RDSP 덕에 큰아들도 동생에 대한 걱정을 덜고 자기 삶에 집중할 수 있어 두 형제 모두에게 좋죠.”

RDSP는 캐나다 연방정부가 2008년 도입한 장애인 적금 제도다. 장애인이 저축하면 정부가 금액을 더해주는 ‘캐나다 장애인 저축 지원금’(Canada Disability Savings Grant·CDSG)과 한 푼도 저금하지 않아도 저축 계좌에 일정 금액을 넣어주는 ‘캐나다 장애인 저축 채권’(Canada Disability Savings Bond·CDSB)으로 나뉜다.

RDSP를 개설하려면 먼저 캐나다 연방정부로부터 ‘장애인 세액공제’(Disability Tax Credit·DTC)라는 자격을 승인받아야 한다. 장애에 따른 어려움이 장기간 지속되리라는 것을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절차다.

캐나다 정부의 지원은 파격적이다. 연간 1500캐나다달러(약 150만 원)를 저축하면 소득에 따라 연간 최대 3500캐나다달러(약 350만 원)의 CDSG가 붙는다. 장애인이 저축하는 돈보다 정부가 보태주는 돈이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CDSG는 평생 최대 7만 캐나다달러(약 70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이 10세 전후로 RDSP에 저축을 시작해 30년간 지속한다면 평생 최대 저금 가능 금액 20만 캐나다달러(약 2억 원)에 CDSG와 복리로 붙는 이자를 더해 3억 원가량 자산을 형성할 수 있다. RDSP에 있는 돈을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투자해 돈을 더 불리는 것도 가능하다.

캐나다 장애 자녀 부모 모임 ‘플랜(PLAN)’의 메건 테일러리드 이사(왼쪽)와 플랜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 및 보호자들. 플랜은 RDSP를 최초로 제안한 단체다. 푸르메재단 제공캐나다 장애 자녀 부모 모임 ‘플랜(PLAN)’의 메건 테일러리드 이사(왼쪽)와
플랜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 및 보호자들. 플랜은 RDSP를 최초로 제안한 단체다. 푸르메재단 제공

장애인 부모 모임이 고안한 RDSP

CDSB는 저축 여력이 없는 최저소득층 가구를 위한 것이다. 개인이 저축을 한 푼도 하지 않아도 정부가 매년 최대 1000캐나다달러(약 100만 원)를 계좌에 넣어준다. CDSB는 평생 최대 2만 캐나다달러(약 2000만 원)까지 쌓여 소득이 거의 없는 장애인도 상당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RDSP에 수만 캐나다달러가 있어도 장애인이 매달 받는 장애 수당이나 연방정부의 다른 복지 급여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산이 모일수록 복지 혜택이 줄어드는 ‘복지 함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2023년 기준 캐나다 전역에서 약 28만 개 RDSP가 개설됐으며, 총 102억 캐나다달러(약 10조2700억 원) 넘는 자산이 축적됐다. 전체 계좌에 들어 있는 자산 중 약 62%가 정부가 지원한 CDSG와 CDSB로 채워졌다.

1989년 캐나다로 이민 온 발달장애인 로즈 씨(32·가명)는 2014년 RDSP를 만들고 11년째 유지하고 있다. 매달 지급되는 장애인 수당 약 1400캐나다달러 중 500캐나다달러(약 50만 원)를 저축한다. 지금까지 총 5만8000캐나다달러(약 5800만 원)를 RDSP에 입금했고, 정부가 여기에 6만4000캐나다달러(약 6400만 원)를 지원해 총 12만2000캐나다달러가 모였다. 이를 안정적인 펀드에 투자해 현재 RDSP 잔고를 15만3000캐나다달러(약 1억5000만 원)까지 불린 상태다.

로즈 씨의 아버지 황희석 씨(가명·68)는 “RDSP로 딸의 미래 재정 문제가 해결돼 현재 행복도가 매우 높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로즈의 일주일은 즐거운 활동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월요일에는 교회 프로그램, 화요일에는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친구들과 모여 점심을 먹은 뒤 게임 모임에 가며, 금요일에는 자원봉사를 합니다. RDSP 덕분에 이렇게 잘 짜인 일과 속에서 돈 걱정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죠. 재정 문제가 해결되면 부모나 주변 기관은 장애 자녀가 모아놓은 돈을 어떻게 쓸지 도와주기만 하면 됩니다.”

RDSP를 처음 제안한 건 장애 자녀 부모 모임 ‘플랜’(PLAN·Planned Lifetime Advocacy Network)이다. 1989년 설립된 플랜은 “부모가 죽으면 장애 자녀는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을 지속했고, 장애 자녀가 지역사회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안전한 삶을 누릴 방법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RDSP에 관한 논의를 이끌었으며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해 RDSP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신청 절차 복잡해 가입률 35%에 그쳐

물론 RDSP에도 아직 개선할 점이 남아 있다. 전체 자격자 중 가입률이 35% 아래에 그친다. 제도가 있어도 그 존재를 모르거나 신청 절차가 복잡해 중도에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이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은 계좌 개설이 특히 어려워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부모나 형제자매가 장애 당사자 대신 RDSP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 문턱을 낮추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한국에도 장애인의 자산 형성을 돕는 제도가 있다. 각 지자체가 ‘이룸통장’ ‘누림통장’ 같은 이름으로 운영하는 ‘장애인 자산형성지원 통장’이 그것이다. 이 제도는 장애인이 2~3년간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지자체가 월 1만~15만 원을 얹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RDSP와 비교할 때 저축 가능 기간이 짧고 지원금 규모와 혜택 폭이 제한적이다.

한국에 RDSP 같은 국가적 장기 저축 제도를 도입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큰 재정 부담에 대한 거부감, 비과세 혜택을 위한 세법 개정, 기존 복지제도와의 연계 등 복잡한 법적·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인의 미래를 위한 ‘투자형 복지’가 장기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캐나다 사례가 우리의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기사 원문 보기: https://weekly.donga.com/society/article/all/11/5884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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