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피와 맥주로 일군 20년 재활…“꿈같은 일 이뤄냈다”

피와 맥주로 일군 20년 재활…“꿈같은 일 이뤄냈다”

 

2024-12-17

 

서울 종로구 신교동 푸르메센터. 발달장애청년이 닫힌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설치예술작품(이제석 작)을 볼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신교동 푸르메센터. 발달장애청년이 닫힌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설치예술작품(이제석 작)을 볼 수 있다.

 

■ HD현대아너상 대상 받은 푸르메재단 백경학 대표

 

재활시설 열악한 현실 충격
장애인 자활시설 건립 혼신
기업·시민들 든든하게 후원
첫 어린이재활병원 등 세워

 

 

피와 맥주로 세운 재단. 지난 2005년 설립된 푸르메재단에 대해 후원자들은 이렇게 불렀다.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비영리단체가 이렇게 불리는 데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연이 있다.

 

지난 20년간 이 재단을 이끌어온 백경학(61·사진) 상임대표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백 대표는 언론인이었던 1998년 독일 뮌헨대 연수 중 영국으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교통사고로 아내가 한쪽 다리를 잃는 일을 겪었다. 귀국 후 아내의 재활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그는 너무도 열악한 한국 의료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 오기 전 치료받았던 영국, 독일 병원들과는 너무 달랐지요. 그래서 우리 손으로 직접 환자 중심의 병원을 만들자고 아내와 약속했습니다.”

 

백 대표는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국내 최초 수제 맥주 양조장인 ‘옥토버훼스트’를 서울 종로에서 운영해 성공을 거뒀다. 이곳 지분 10%와 아내의 교통사고 보상금 절반을 더해 푸르메재단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렇게 피와 맥주로 만들어진 푸르메재단이 지난 20여 년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HD현대아너상 대상을 받았다. 이 상은 HD현대1%나눔재단(이사장 권오갑)이 소외된 이웃과 취약계층을 위해 헌신하는 시민 영웅을 발굴하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확산하기 위해 작년에 제정한 것이다. 주최 측은 푸르메재단에 대상을 수여하는 이유로 “어린이재활병원(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과 스마트팜 기반의 발달장애인 일터(푸르메소셜팜)를 국내 최초로 건립하는 등 한국 장애인 복지에 새로운 지평을 연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17일 오전 경기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열렸다.

 

백 대표는 “재단 이름으로 이렇게 큰 상을 받는 것이 영광스럽다”며 “앞으로도 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힘쓰라는 격려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사회 장애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를 기부자들과 함께 풀어가도록 더 고민하겠다”고 했다. 그는 시민과 기업의 후원으로 한국에서는 꿈으로만 여겨졌던 일들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재단 설립 때부터 김성수 주교, 강지원 변호사, 고 박완서 소설가,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기부천사 션, 이지선 이화여대 교수 등이 도왔던 것도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 덕분에 재단은 2007년 민간 최초로 장애인 전용 푸르메나눔치과를 개원, 장애인 재활의료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6년에는 국내 최초 민간 어린이재활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했다.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1만 명의 시민과 넥슨 등 500곳의 기업에서 총 430억 원을 기부한 결실이었다. 지난 8년간 이곳에서 집중 재활치료를 받은 장애어린이가 총 51만여 명에 이른다. 국립 권역별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정책의 모델이 된 병원이기도 하다.

 

푸르메재단은 장애청년을 위한 혁신적 일자리 모델로 첨단기술이 접목된 스마트팜 건립을 추진했다. 재활치료를 마치고 성인기에 접어든 장애인들의 일자리 문제도 심각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뜻에 공감한 장애청년의 부모가 부지를 기부했다. 2300여 명의 시민과 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의 기부가 이어져 2022년 경기 여주시에 푸르메소셜팜을 건립했다.

 

“현재 55명의 장애청년이 이곳에서 정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5명의 장애청년이 안정적인 소득을 바탕으로 독립생활의 꿈을 이뤘고, 5명이 자립 훈련을 받고 있지요.”

 

이외에도 푸르메재단은 매년 5000여 명의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 25억 원 규모의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등 산하기관을 운영하며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누리도록 돕고 있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데 닥치기 전까지는 남의 일로만 여기지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행에 대해 공감하며 공동체 지향적으로 인식을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가족 중 한 명이 장애를 입더라도 가정이 몰락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갖춰야 합니다.”

 

장재선 전임기자

 

출처: 피와 맥주로 일군 20년 재활…“꿈같은 일 이뤄냈다” :: 문화일보 munh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