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질주 본능’ 김윤지…“스키, 내가 가야할 길 알려주는 나침반”
‘질주 본능’ 김윤지…“스키, 내가 가야할 길 알려주는 나침반”
[‘찐’한 인터뷰] 전국장애인체전 MVP 김윤지
“남동생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저라네요”
2024-11-29
김윤지(18·가재울고)는 얼마 전 수학능력시험(수능)을 마쳤다. 한국체대 특수체육교육과에 지원했다. 수능을 보기 전 김윤지는 깜짝 나눔을 실천했다. 10월 말 폐막한 전국장애인체전에서 수영 5관왕에 오르면서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는데, 이때 받은 상금 300만원을 푸르메재단에 기부했다.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선천적 척수 손상(이분척추증)이 있는 김윤지가 재활 활동과 수영을 배웠던 곳이다. 지난 18일 이천 선수촌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윤지는 “어머니가 먼저 권유했는데, 나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금이어서 기부를 하게 됐다”면서 “내가 받은 기쁨을 남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윤지는 한국 장애인 스포츠의 미래로 꼽힌다. 여름(수영), 겨울(노르딕스키) 체전 때 모두 신인왕(2022년)과 최우수선수상(2023년 겨울, 2024년 여름)을 받았다. 국내 장애인 스포츠 사상 최초의 일이다. 두 종목을 해서 힘들 법도 하지만 늘 웃고 있다. 김윤지의 도전과 열정을 옆에서 지켜본 여섯살 터울의 남동생은 영어 시간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우리 누나’를 적기도 했단다.
2024 전국장애인체전 수영 종목에 출전한 김윤지.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애인 스포츠는 수영으로 처음 접했지만 김윤지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 것은 노르딕스키였다. 2020년 말 즈음 대한장애인체육회 기초종목 겨울스포츠캠프에 참가해 알파인스키, 아이스하키, 노르딕스키를 접했는데 노르딕스키가 제일 재미가 있었다고 한다. 장애인 노르딕스키는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종목이 있는데 둘 다 한다. 김윤지는 “시원한 것을 좋아해서 노르딕스키가 좋았다”면서 “질주본능도 있다. 오르막은 힘들지만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막상 내리막에 들어서면 빠른 속도 때문에 무서워서 내적 비명도 지르는데 너무 재밌다”고 했다.
처음에는 “진짜 많이 넘어지고 스키 폴도 부러지고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그물망에 걸리기도 했다.” 지금은 나름 안 아프게 넘어지는 방법을 터득했다. 넘어진 다음 누구보다 빨리 일어서기도 한다. 김윤지는 “넘어지면 아프기는 한데 다시 질주하면서 아드레날린이 폭발해서 아픈 것을 다 잊는다”며 웃었다. 2022년 처음 노르딕스키 국가대표가 된 그는 “국외 경기를 가면 드넓은 환경에서 시야가 확 넓어진다. 높이 올라가면 구름이 더 크게 보이고 주위가 온통 새하얗다”고 했다. 노르딕스키를 타기 전까지는 볼 수 없던 장면이다. 가장 좋아하는 색은 하얀색 끝에 보이는 시리도록 파란 하늘색이다.
수영, 육상, 그리고 노르딕스키. 김윤지는 주로 기초 종목, 개인 종목만 했었다. 팀 스포츠는 안 해봤다. 하지만 노르딕스키 또한 ‘팀’이 중요하다. 김윤지는 “코스가 넓어서 코치,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코스 중간중간에 서서 경기를 도와주고 함께한다. 마지막에는 감독님이 같이 뛰면서 응원을 해주신다. 개인전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팀 스포츠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좋다”고 했다. 25일 노르웨이로 출국한 김윤지는 12월21일까지 훈련 및 대회 참가를 이어간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겨울패럴림픽을 생각하면 쉴 겨를이 없다. 지난 3월 캐나다에서 열린 2024 파라 노르딕 월드컵파이널대회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프린트, 중거리(5km), 바이애슬론(10km)에서 2위를 하는 등 실력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김윤지가 2024 전국장애인체전 수영 종목에서 딴 금메달 5개와 은메달 1개를 보여주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김윤지는 지난 9월 장애인 노르딕스키로 BDH 파라스에도 입단했다. 앞으로 학교 공부를 하면서 BDH 파라스 소속 선수로 활약하게 된다. 10월 말 첫 월급을 받았는데, 아빠의 휴대폰을 새것으로 바꿔드렸다. “사랑한다”는 말이 들어간 손편지와 함께였다. 김윤지는 “아빠가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희생을 많이 하시려고 한다.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엄마와는 쇼핑을 함께 가서 옷을 사드리려고 한다. 두 살 터울 오빠도, 막냇동생도 김윤지의 든든한 응원군이다. 학교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김윤지는 노르딕스키를 “나침반”이라고 했다. “내가 가야 할 곳을 알려주고, 앞으로 나아가게끔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김윤지는 “지체 장애인 선수들은 체육에 대한 접근성 떨어져서 제대로 된 체육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도 장애인체육회나 다른 곳에서 많은 노력을 해주셔서 그나마 지금은 체육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면서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으면 용기를 내서 실천하고 꼭 장애인 체육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진짜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곧 성인이 되는 김윤지가 하고 싶은 것은 운전면허 따기와 밤 10시 이후까지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래 부르기다. 청소년은 밤 10시까지만 노래방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름 학교 합창단 출신이어서 노래는 꽤 한다. 친구들과 함께 코인노래방에서 3시간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그는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하니 팬이기도 하다. 김윤지가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곡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이다. 그 또한 수영, 노르딕스키 등 스포츠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 터. 김윤지는 “진짜 수영이나 노르딕스키는 나에게 새로운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고마운 존재다. 노력하면 이만큼 할 수 있다는 성취감도 줬다”고 했다. 휠체어 두 바퀴에서 벗어나 만나는 물 안의 세상에서, 그리고 눈 위의 세상에서 다시금 웃는 파란 하늘을 닮은 김윤지였다.
김양희 기자
출처: ‘질주 본능’ 김윤지…“스키, 내가 가야할 길 알려주는 나침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