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태어나 처음으로 영어를 배웠어요” 발달장애인 홀로서기 돕는 할머니 선생님

“태어나 처음으로 영어를 배웠어요” 발달장애인 홀로서기 돕는 할머니 선생님

2023-01-10

 

65세 약사 출신 최은용씨
발달장애 청년 일하는 농장서
주 3회 하루 2시간씩 무료 봉사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 보며 감동”

 

10일 경기 여주 ‘푸르메 소셜팜’에서 최은용씨가 발달장애인 직원들에게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최씨는 7개월째 매주 3회, 하루 2시간씩 무료로 이곳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직원들을 가르치고 있다. /푸르메재단10일 경기 여주 ‘푸르메 소셜팜’에서 최은용씨가 발달장애인 직원들에게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푸르메재단

 

“할머니 선생님 덕분에 처음 배우는 것들이 많아서 너무 좋아요. 수업하는 날만 기다려요.”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푸르메 소셜팜’에서 일하는 김종익(24)씨는 요즘 이런 말을 자주 한다. 푸르메 소셜팜은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 등을 지원하는 비영리공익재단인 푸르메재단에서 만든 것으로,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기 위해 만든 스마트 농장이다. 현재 발달장애인 청년 53명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종익씨도 그중 하나다.

 

이 농장에는 지난해 6월부터 칠판과 책상 10여 개가 놓인 작은 교실이 생겼다. ‘할머니 선생님’ 최은용(65)씨가 농장에 나타난 뒤부터다. 그는 최근까지 7개월째 일주일에 세 차례, 하루 2시간씩 무료로 이 교실에서 발달장애인 직원들을 가르치고 있다.

 

25년간 경기 광명시에서 약사로 일하다 지난해 은퇴한 최은용씨는 어느 날 TV에서 푸르메 소셜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것을 계기로 ‘할머니 선생님’이 되었다. 방송을 본 후 ‘여기서 무슨 일이라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푸르메 소셜팜을 찾아왔다고 한다. 처음 농장에 온 날, 그는 때마침 퇴근한 직원들이 집에 가지 않고 강당에 모여 있는 모습을 봤다.

 

그는 “두 사람이 탁구를 치고 있었는데, 다들 우두커니 서서 오가는 탁구공만 바라보고 있더라”면서 “이들이 우리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도록 그 시간에 뭔가 가르쳐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할머니 선생님' 최은용씨(가운데)와 푸르메소셜팜의 발달장애 직원들/푸르메재단 제공'할머니 선생님' 최은용씨(가운데)와 푸르메소셜팜의 발달장애 직원들/푸르메재단 제공

 

‘할머니 선생님’의 수업은 과목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개인별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맞춤형’ 수업이다. 최씨는 “한글을 모르는 직원에게는 한글을 알려주기도 하고 계산을 못 하는 친구에게는 덧셈과 뺄셈을 알려준다”며 “마트 등에서 나눠주는 전단을 앞에 놓고 가격을 읽어보거나 사람들과 대화하고 눈을 맞춰 인사하는 연습도 하고 존댓말 사용법같이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기도 한다”고 했다.

 

처음엔 눈 맞추는 것도 어색해했던 직원들은 이제 수업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발달장애인 직원 김광채(24)씨는 “처음에는 계산 공부 하는 게 어려워서 힘들었는데, 덧셈과 뺄셈을 배우면서 일하는 것도 더 편해졌다”고 했다. 또 다른 직원 김종익(24)씨도 “선생님께 영어랑 한자를 태어나 처음 배웠다”며 ”다른 나라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처음이라 모든 게 다 신기하다”고 했다.

 

푸르메 소셜팜 관계자는 “최 선생님의 수업을 통해 직원들이 글자나 계산 등 실생활에 꼭 필요한 교육을 받으면서 업무 능력도 향상됐고, 무엇보다 사회적 자립을 꿈꿀 수 있는 자신감이 채워졌다”고 했다.

 

최씨도 ‘할머니 선생님’으로 살게 된 제2의 인생이 더없이 소중하다고 했다. “직원들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하루 감동하기도 하고, 나도 성장하는 기쁨을 느껴요. 발달장애인들이 장애에 매몰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변화의 순간을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서유성, 김지원 기자

 

출처: “태어나 처음으로 영어를 배웠어요” 발달장애인 홀로서기 돕는 할머니 선생님 - 조선일보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