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우영우들의 농장’에서 풍겨온 빵 냄새
‘우영우들의 농장’에서 풍겨온 빵 냄새
경기도 여주에서 토마토·버섯 키우고 빵 만드는 발달장애 청년들
2022-09-18
정규직 제빵사로 일하는 발달장애 청년 원유림(오른쪽)씨와 조현진(왼쪽)씨가 2022년 9월6일 경기도 여주시 오학동 무이숲 카페 베이커리부에서 빵을 만들고 있다. 이곳에선 4명의 발달장애인이 제빵사로 일한다. 샐러드빵에 들어간 토마토는 카페 바로 옆 푸르메소셜팜 온실에서 재배했다.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우영우와 기러기는 없지만 토마토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온실 한가득 빨갛게 열려 있다. 토마토를 키우고 거두는 이는 우영우와 같은 발달장애인 청년들이다.
어린이재활병원을 운영하는 푸르메재단은 2021년 4월 경기도 여주시 오학동에 푸르메소셜팜을 열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이상훈·장춘순 부부가 기부한 1만1800㎡ 부지에 SK하이닉스와 여주시, 한국지역난방공사, 장애인고용공단, 에너지기술연구원 그리고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유리온실과 버섯재배사를 세웠다. 이곳에선 발달장애 청년 37명이 토마토와 표고버섯을 키워 기업 식당에 납품하거나 일반 소비자에게 팔고 있다. 발달장애 청년들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 4시간씩 교대로 일한다.
2022년 9월2일, 30도를 웃도는 온실에서 토마토 곁순을 따고 있는 이수연(29)씨를 만났다. 첨단기술이 적용된 인공지능(AI) 온실이라지만, 바닥부터 천장까지 수직으로 묶어놓은 끈을 따라 자라다 풀려난 토마토 줄기를 다시 끈에 두르는 일도 사람의 몫이다. 이씨는 낮은 곳부터 높은 곳까지 넓은 공간을 이동하며 작업하느라 사다리차를 직접 조종하며 일한다. 기자를 태우고도 능숙하게 조종하며 바지런히 손을 놀린다.
2022년 8월 푸르메소셜팜 부지 안에 카페 ‘무이숲’이 문을 열었다. ‘다름이 없는 숲’이란 뜻을 지닌 이곳에선 발달장애인 제빵사와 바리스타 7명이 일한다. 이들은 6월에 채용돼 직무교육을 받고 8월부터 영업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숙련된 비장애인 작업지도사의 도움을 받는다. 대학에서 서비스학을 전공한 원유림(24)씨는 오전반에서 함께 일하는 조현진(19)씨를 동생처럼 챙긴다. 늘 밝은 표정에 높은 소리를 내는 원씨가 빵 반죽을 하다 흘러내린 조씨의 소매를 걷어 올린다. 그래도 빵이 가득 담긴 쟁반을 카트 맨 위에 올리고 카페 진열대를 향해 빵차를 밀 때는 조씨가 앞장선다.
오후반으로 일하는 발달장애 제빵사 하우석(24)씨에게 이곳에서 일하는 소감을 물었다. 하씨가 노래하듯 높은 소리로 말했다. “장애인은 짧게 일해야 합니다. 오래 해야 하니까요. 70살까지 일할 겁니다.” 여주시 장애인복지관 카페 바리스타를 거쳐 이곳에서 빵을 만드는 원유림씨는 언젠가 자신의 빵집을 차릴 꿈을 꾼다.
푸른 숲에 둘러싸인 한가운데 잔디밭이 펼쳐진 무이숲 카페는 벌써 지역 명소로 자리잡았다. 제법 잦아진 연인과 여행객의 발길 사이로 길냥이들도 나른한 걸음을 옮긴다. 우영우는 없지만 이수연, 원유림, 조현진, 하우석, 배신영, 유지훈 등 발달장애 청년들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꿈을 키우며 일하고 있다.
푸르메소셜팜과 무이숲 카페에서 일하는 발달장애 청년들이 셔틀버스에서 내려 출근하고 있다.
발달장애 제빵사 하우석(맨 왼쪽)씨와 배신영(오른쪽 둘째)씨가 비장애인 제빵사들과 함께 빵을 만들고 있다.
배신영(가운데)씨가 자신이 만든 빵을 카페 진열대에 늘어놓고 있다.
커피부에서 일하는 발달장애 청년 유지훈씨가 손님에게 커피와 빵을 내주고 있다.
이수연씨가 푸르메소셜팜 온실에서 사다리차에 올라 토마토 곁순을 자르고 있다. 알이 굵고 튼실한 토마토가 열리게 하려고 곁순을 쳐내고 줄기를 끈에 둘러준다.
이수연씨가 일하고 있는 사다리차 양 옆으로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발달장애 청년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토마토 꼭지를 따고 있다.
온실 한켠에서 길냥이들이 쉬고 있다.
푸르메소셜팜 유리온실과 버섯재배사, 그리고 뒤편 무이숲 카페 전경.
이정우 선임기자
출처: ‘우영우들의 농장’에서 풍겨온 빵 냄새 (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