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출근이 더 좋다" 이상한 빵집…대중교통 3번 갈아타고 오는 이유

"출근이 더 좋다" 이상한 빵집…대중교통 3번 갈아타고 오는 이유

 

2022-08-14

 

“녹차를 좋아해서 말차라떼 만드는 게 제일 재밌어요. 다음은 언니들이랑 수다 떠는 건데, 휴가 땐 언니들을 못 봐서 아쉬웠어요.”

 

이정화(20)씨는 베이커리카페 ‘무이숲’(경기도 여주시 도예로 247)에서 일한다. ‘다르지 않다(無異)’는 의미의 무이숲은 ‘장애, 성별, 나이, 인종 등과 상관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치를 담은 브랜드다.

 

경기도 양평군에 사는 이씨는 2시간 걸려 출근하고 나면 테이블 정리, 청소, 설거지, 빵 포장 등 카페의 온갖 일을 한다. 틈틈이 음료 제조도 배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하는 성격인 이씨는 바리스타, 제빵에 스포츠마사지 자격증까지 보유한 자격증 부자다. 요즘 퇴근 뒤엔 가족들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를 보는 게 놓치기 싫은 행복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돕는 드라마가 나와서 기뻤다”고 말하는 이씨도 자폐 스펙트럼은 아니지만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들의 새로운 일터인 무이숲이 지난 9일 문을 열었다. 지난 3월 문을 연 발달장애인 주축의 스마트팜 ‘푸르메소셜팜’ 내에 새로운 일터가 생긴 것이다.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 푸르메재단이 운영한다. 카페는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연면적 1553㎡ 규모다. 발달장애인의 일터로 지은 카페로는 국내 최대다. 영업 이틀째인 지난 10일 오후 이미 10여 명의 손님들이 각종 음료와 빵을 즐기고 있었다. 무이숲은 스마트팜에서 재배한 토마토를 활용한 토마토바질에이드 등 시그니처 메뉴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한 베이커리카페 ‘무이숲’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이정화(20)씨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휴가보다 출근이 좋다”...장애인이 다수인 ‘이상한’ 직장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한 푸르메소셜팜에서 발달장애인 장인성(21·왼쪽)씨와 이덕희(32)씨가 포장된 방울토마토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푸르메소셜팜은 2019년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이상훈(69)·장춘순(65) 부부로부터 기부받은 땅에 지어졌다. 부지만 1만1800m². 2020년 12월에 채용된 1기 15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농장(37명)과 카페(7명)를 합쳐 44명의 장애인들이 근무하고 있다. 비장애인 직원은 15명에 불과해 장애인 직원이 다수인 ‘이상한’ 직장이다. 김병두 푸르메소셜팜 대표는 “장애인이 소수인 일터에서는 이들이 ‘장애인이라서 그렇다’는 말을 들으며 위축되곤 한다”며 “여기에선 남다른 행동도 ‘장애인이라서 그렇다’기보단 그냥 그 사람의 특징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장애인 근로자들의 푸르메소셜팜에 대한 애착은 크다. 지난해 4월에 입사해 농장에서 토마토 세척‧분류 작업을 하는 발달장애인 이덕희씨(32)는 “우리 농장에서 키운 토마토가 한국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했다. 지난주 전남 여수로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다녀왔다는 발달장애인 장인성(21)씨는 “휴가보다 출근하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오선영 푸르메재단 홍보팀장은 “장애인 근로자들은 근무시간은 하루 4시간이지만 그 전에 도착해 식당에서 급식을 먹거나, 일이 끝난 이후에도 농장 근처의 길고양이를 돌보는 등 회사에 오래 머문다 직원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지선 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연구팀의 연구『사회적 농업에서 종사하는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푸르메여주팜을 중심으로』는 “(푸르메소셜팜의)일자리 만족도 수준은 전체 장애인 근로자나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정신장애인 근로자에 비해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장애인·비장애인 함께 하는 것 충분히 가능해”

 

이정화(20)씨가 “무이숲의 ‘신상’ 메뉴가 정말 맛있다”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보여주고 있다. 이남영 기자

푸르메소셜팜이 자리 잡은 지 1년이 지나면서 장애인 직원들의 자립도도 크게 향상되고 있다. 취업 초기 부모의 차로 출퇴근을 했다는 이덕희씨는 스스로 출퇴근하는 동료들에 자극 받아 최근 대중교통을 택했다. 경기도 성남시부터 여주시까지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하고 셔틀버스에 올라야 하는 만만찮은 길이다.

 

김 대표는 “발달장애는 아무리 치료를 해도 집에만 있으면 퇴행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동료와 함께 대화를 하면서 어휘구사력과 사회성이 발달하며 성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대표는 “발달장애와 지체장애를 모두 가져 손떨림이 심했던 직원도 일을 하면서 상당히 좋아졌다”며 “모두 ‘내가 이 농장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어 앞다퉈 일하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이 근무하는 베이커리카페 무이숲이 경기도 여주시에 지난 9일 문을 열었다. 사진 푸르메재단

푸르메소셜팜의 직원들은 장애인‧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성과를 내는 드라마가 현실에서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무이숲의 비장애인 바리스타 한혜빈씨는 “같이 일할 때는 ‘장애가 있는 동료’라는 생각 자체를 할 이유가 없다”며 “편견이 없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남영 기자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94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