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푸르메재단: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다

푸르메재단 :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다

2022-05-05

5월 5일 어린이날입니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곤 해요.

여기,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쬐기 위해 걷는 연습을 하는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또는 사고를 당해 몸이 마비된 아이들이죠.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이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딸이 하반신이 마비된 채 태어났거든요. 2015년부터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 지도를 만들며 장애인 이동권 증진에 애써온 이유예요.

홍 이사장이 어린이날을 맞아 롱블랙에 꼭 소개하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해요. 장애 어린이·청소년의 재활을 돕는 푸르메재단입니다. 2005년 설립된 이 재단은 어린이재활병원과 장애인복지관, 직업재활센터, 보조기기 센터 등 15개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선 서울 상암동 대로변엔 유리로 된 7층 건물이 있습니다.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입구에 들어서면 연두색 소파와 하늘색 벽이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곳곳엔 가지런히 유모차들이 줄을 서 있어요.

집중 치료가 이뤄지는 2층 라운지는 안간힘을 내는 아이들로 가득했어요. 서너 살쯤 된 남자아이가 천장에 연결된 전신 슈트를 입고선 한발 한발 걷고 있어요. 재활 치료사의 부축을 받으면서요. 의사가 손으로 짚어주는 그림을 보며 큰 소리로 단어를 발음하는 아이도 있고요. 바닥 매트 위에선 5개월이나 됐을까 싶은 아기의 휜 다리를 치료사가 조금씩 눌러 펴주고 있었습니다.

2016년 문을 연 이 병원에선 매일 500명의 어린이들이 집중 재활치료를 받습니다. 지난 6년 동안 31만 명의 어린이가 81만 건의 치료를 받았어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겐 치료비를 깎아주거나, 아예 받지 않기도 합니다. 매년 30억원의 적자를 냈고, 코로나 이후엔 5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있죠.

누가 이 병원을 세워,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하신가요. 어린이날을 맞아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를 만났습니다.

Chapter 1.
한국에 하나뿐인 통합형 어린이재활병원

주언이(가명)는 열여섯 살입니다. 태어날 때 뇌 손상으로 다리가 마비됐어요. 열네 살 때까지는 한번도 혼자 걸어본 적이 없다고 해요. 재활 치료를 받으면 걸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언이 가족이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알게 된 건 2020년이에요. 석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매일 1시간30분씩 집중 운동치료를 받았죠. 40분 동안 시속 2.5km의 느린 속도로 트레드밀을 걸었습니다.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복도를 끝까지 오가는 연습을 했어요.

이제 주언이는 두 발로 중학교에 갑니다. 지팡이를 짚고 지하철을 타거나 에스컬레이터에 오를 수도 있죠. 휠체어 없이는 외출을 꿈꾸지 않았던 주언이는 “걸을 수 있다는 건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시민과 기업, 지자체가 조금씩 힘을 모아 지었죠. 지금은 세상을 떠난 김정주 넥슨 창업주가 재단 설립비용 430억원 중 200억원을 보탰습니다. 마포구가 1000평 규모의 부지를 제공했고,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구를 지원했죠. 1만 명의 시민과 500여개 기업이 돈을 보탰고요.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가 감싼 건물, 미끄럼틀과 동물 인형이 놓인 라운지, 아이와 보호자가 산책하는 7층 옥상 정원까지.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곳은 어떤 병원보다 분주합니다. 180명의 의료진과 직원이 늘 바삐 뛰어다녀요. 재활의학·정신건강의학·소아청소년·치의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아이들을 집중 치료합니다.

병원을 짓고 운영하는 건 푸르메재단입니다. 지난해 재단으로 들어온 기부금은 모두 98억여원. 그 중 42억원이 어린이재활병원 및 장애 어린이의 의료비와 교육사업에 지원됐습니다. 덕분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2016년 서울 상암동에 문을 연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지상 7층, 지하 3층의 규모의 건물에 18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푸르메재단
2016년 서울 상암동에 문을 연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지상 7층, 지하 3층의 규모의 건물에 18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Chapter 2. 가족의 교통사고,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고민하다

늘 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백경학 상임이사도 그랬습니다. 그는 언론사 기자였어요. 독일 연수 중 가족과 겪은 교통사고가 백 이사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1998년, 영국의 작은 도시 칼라일. 도로 갓길에 선 백 이사의 승용차를 다른 자동차가 세게 들이받았습니다. 백 이사의 아내가 딸아이의 옷을 챙기려 트렁크를 열던 찰나였어요. 충격으로 백 이사는 창 밖으로 날아갔고, 아내는 다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부부가 실려 간 곳은 스코틀랜드 외곽의 작은 병원이었어요.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의사는 아내의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소견을 전했죠. 석 달 동안 두 차례의 대수술을 받고서야 아내는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충격에 빠진 백 이사를 살핀 건 주치의였어요. 아내로부터 백 이사를 떼어 놓고, 주기적으로 건강 상태를 확인했죠. 아내의 상태를 끈질기게 브리핑하기도 했어요.

“의료진 여섯 명이 우리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어요. 제가 아내의 얼굴을 닦아주기라도 하면 쫓아와 주의를 줬죠. ‘당신이 할 일이 아니다. 보호자도 안정을 취할 의무가 있다’면서요.

의사는 매일 같이 저를 붙잡고 30~40분 동안 아내의 상태를 브리핑했습니다. ‘당신의 아내가 이 병원에서 가장 위중한 환자다. 당신은 부인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면서요.”

회복을 위해 건너간 독일은 더했습니다. 백 이사 아내의 재활에 온 의료진이 사활을 걸었죠. 물리 치료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오랜 혼수상태로 인한 근육 퇴화를 막기 위해서, 균형을 유지하고 서는 훈련과 평생봉을 잡고 걷는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죠. 아내를 위해 동양인 체형에 맞는 재활 도구와 치료법을 새로 개발하기도 하고요.

백 이사는 의료진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돌아온 대답은 짧고 명료했습니다. “당신도, 아내도 스스로 살아가야 하니까.” 집중 치료 덕분에 아내는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1년 반 만에, 다른 사람이 옆에서 잡아주면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됐죠.

문제의식 : 제대로 된 재활병원이 없다
한국으로 돌아온 가족은 열악한 재활 의료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일단 아내가 재활 치료받을 병원이 없었어요. 대형 병원에서 치료받으려면 두세 달은 기다려야 했죠.

“재활 시기를 놓치면 아내의 근육이 굳을 수 있었어요. 병원 원무과에서는 늘 같은 말만 했죠. ‘아내분보다 심각한 환자가 수십 명은 기다리고 있어요.’ 화가 나기보다 안타까웠어요. 왜 재활병원이 부족할까, 하고요.”

백 이사는 여기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장애인이 제때, 제대로 치료받는 병원이 필요하다는 걸 발견했죠.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기부금을 받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병원을 운영하기로 결심했어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유럽의 재활병원을 경험했잖아. 그런 병원을 우리나라에도 만들자.’ 절단 수술 이후 웃음을 잃었던 아내가 이 얘기를 듣고 웃었습니다. 그래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푸르메재단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푸르메센터. 치과와 복지관, 어린이재활의원을 한데 모았다. ⓒ푸르메재단
푸르메재단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푸르메센터. 치과와 복지관, 어린이재활의원을 한데 모았다.

* 장애인을 위한 재활병원을 짓는다는 목표로 탄생한 푸르메재단. 과연 어떻게 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할 수 있었을까요? 푸르메재단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기사 전문 보기: https://bit.ly/3wovS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