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우리 막내도 일할 농장 있을까?…발달장애자녀 부모의 애끓는 호소
우리 막내도 일할 농장 있을까?…발달장애자녀 부모의 애끓는 호소
“농장에 갈 수만 있다면 서울에서 여주로 이사할게요.”
발달장애 아들을 둔 김아무개(75)씨의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그는 “막내가 30대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다. 나도 이제 노년인데 이 아이를 두고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6일 경기도 여주시 오학동 푸르메소셜팜 유리온실이 문을 열었다. 푸르메소셜팜은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첨단 스마트팜(농장)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발달장애 청년 31명은 하루 4시간씩 방울토마토와 버섯을 재배하거나 포장하는 일을 하고 매달 100만원가량 급여를 받는다. 명함도 지급되는 어엿한 자립 일터다.
농장 개소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애끓는 호소가 이어졌다.
89년생 발달장애 아들을 둔 어머니 박아무개씨는 “아들이 얼마 전 지방의 전문학교를 졸업했는데, 다시 서울로 와서 집에만 있어요. 그동안도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아빠와 엄마가 이렇게 늙어가는 마당에 앞으로가 너무 캄캄해요. 푸르메소셜팜이 아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될 것 같아요. 일단 건립기금 기부부터 동참할게요”라고 말했다.
지적·자폐성 장애를 지닌 국내 발달장애인은 2019년 기준 24만2천여명에 이른다. 정규학교에서 특수교육과 직업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청년이 된 이들이 갈 곳은 턱없이 부족하다. 15살 이상 발달장애인 20만5천여명 가운데 취업자는 4만7천여명으로, 취업률은 23.3%(2020년 기준)에 불과할 정도다. 전체 장애인 평균 취업률 34.9%는 물론 지체장애인의 취업률 44.4%에 견줘 턱없이 낮다. 그나마 취업 가능한 곳도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받는 한시적 사업인 복지관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하는 청소 등 허드렛일이 대부분이다.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들의 바람은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일하고 비장애인과 같은 사람 대우를 받는 것이지만 쉽지만은 않다.
장애인 재활과 자립을 돕는 비영리재단인 푸르메재단은 여주에 1호 농장을 개원한 데 이어 서울 등 수도권에서 2호 농장 터를 찾아 나섰지만 2년째 제자리다. 삼성으로부터 설립 자금 25억원을 기부받았지만, 마땅한 땅을 찾지 못해서다.
정태영 푸르메재단 대외협력실장은 “여주농장이 농업형이라면, 제2농장은 도시형으로 추진하고 있다. 서울 등 도시에 인접한 2~3천평 규모 땅에 도심지에 거주하는 발달장애 청년의 자활·자립을 돕고 도시민과 소통도 할 수 있도록 여러 자치단체를 찾아갔는데 언제 땅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솔직히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여주 푸르메소셜팜은 독지가와 에스케이(SK) 하이닉스가 땅과 건립 기부금 50억원을 내놓고, 여주시 등 공공기관이 힘을 보태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땅값이 금값’인 서울 수도권에서 땅을 사는 일도, 기부받는 일도 어렵기만 하다. 임지영 푸르메재단 경영지원실장은 “자치단체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유지 등이 대개 그린벨트처럼 용도가 제한된 경우가 많다. 또 자치단체들이 의욕을 갖고 나서다가도 주민들이 ‘왜 이 좋은 땅을 장애인에게 주나. 주민을 위한 수영장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면 멈칫해버리기 일쑤다”라고 말했다.
23살 발달장애 아들을 둔 신아무개씨는 “내 아이가 수원에 있는 자혜학교를 나왔어요. 혹시 수원시에는 (푸르메소셜팜 같은) 농장을 지을 계획이 없나요?”라고 물은 뒤 “이런 일자리를 꿈꿔왔는데 푸르메가 실현한다고 해서 너무 기뻐요. 전국 곳곳에 지어졌으면 좋겠어요. 제발 수원시에도 지어주세요”라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홍용덕 기자
출처: http://www.hani.co.kr/arti/area/capital/9899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