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엄마 낡은 차 바꿔줄 거예요”…발달장애 청년 주호씨의 웃음
“엄마 낡은 차 바꿔줄 거예요”…발달장애 청년 주호씨의 웃음
2021-01-04
[현장] 국내 첫 발달장애 청년 일터 ‘푸르메소셜팜’
“3년 안에 엄마의 낡은 차를 바꿔 주고 싶어요.”
지난 12월31일 경기도 여주시 어르신 공동작업장에서 브로콜리 포장작업을 하던 이주호(24)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적장애와 신체장애가 겹친 중복장애인인 이씨는 푸르메재단이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세운 최첨단 농장인 ‘푸르메소셜팜’ 재배원이다.
발달장애(지적장애+자폐성장애) 청년을 위한 돌봄농장(케어팜)이기도 한 푸르메소셜팜은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쳐 지난 11월 이씨 등 16명을 채용했다. 2 대 1 경쟁률을 뚫고 채용된 이들은 두 팀으로 나눠 오전·오후 4시간씩 이곳 임시 작업장에서 농산물 포장 등 취업 후 적응지도 훈련을 받는 중이다. 장애 때문에 어머니가 운전하는 낡은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이씨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12월24일 100여만원 첫 월급도 받았다. ‘내가 번 돈으로 엄마 차 바꿔주기’란 꿈을 이루기 위한 첫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11월 16명 채용…첫 월급에 함박웃음 지어
3월 스마트팜 완공 뒤 9월 본격 가동 예정
지난 31일 찾은 이곳 임시 작업장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여주시 오학동 야산 1만1800㎡에는 푸르메소셜팜의 스마트농장 골조 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다. 정태영 푸르메재단 기획실장은 “(최첨단 시설을 갖춘 유리온실 농장이 완공되면) 발달장애 청년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근무할 수 있고, 농한기 없이 1년 365일 일거리가 생긴다. 첨단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스마트팜인 만큼 상당한 수준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올해 3월 완공해 9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갈 예정인 유리온실에서는 방울토마토와 표고버섯을 재배하게 된다. 이어 생산된 방울토마토를 소포장하거나 토마토주스로 만드는 가공시설, 베이커리 카페 등 판매시설도 운영할 예정이다. 운영이 본궤도에 오르면 연간 방울토마토로 7억원, 버섯 재배로 1억원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농업을 통해 발달장애 청년들의 치유와 자활을 돕는 푸르메소셜팜 구상은 지난해 3월 발달장애 자녀를 둔 이상훈(67) ㈜와이즈산전 대표 부부가 여주시 오학동 땅 1만1800㎡를 기부하면서 시작됐다. 여기에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건립비 40억원을 대고 스마트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구매를 약속했다. 이어 여주시와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출자 형태로 건립에 참여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도 신재생에너지설비 지원 등에 힘을 보탰다.
독지가·기업·지방자치단체·공기업·연구기관…
민관 협력해 만든 ‘보살핌 받는 자활일터’
졸업 뒤 할 일도, 딱히 갈 곳도 없는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푸르메소셜팜은 새로운 지평을 열 ‘스타트업’이다. 우편배달부가 꿈인 발달장애 청년 김명곤(22)씨는 지난 11월 합격 통보를 받고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앞으로는 토마토를 배달하고 싶다”고 벅찬 감동을 전했다. 오는 15일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양평 창인학교를 졸업하는 김씨는 학교에서 스타로 떠올랐다. 창인학교의 누리집에 자랑스러운 선배 김씨의 취업소식이 실렸고, 학교 쪽은 통학버스에 붙일 김씨 사진과 취업 소식을 담은 시안을 마련하는 등 분주하다.장상근 창인학교 교사는 “2년제 직업전문교육을 받고도 취업을 못 한 채 복지관이나 가정에 머무는 사람이 100명 중 90명에 이른다. 시행착오를 이기고 고용이 안정된 곳에 취업한 명곤이를 통해 후배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발달장애인은 모두 25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신체장애인들은 보조기기의 발전 등으로 그나마 사회 진출이 조금씩 수월해지고 있지만 지적·자폐성 장애를 지닌 발달장애 청년들의 취업은 하늘에서 별 따기다. 실제 이들의 취업률은 장애인 평균 취업률(36.9%)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5.7%에 그친다. 직업교육을 받고도 취업하지 못해 부모가 자녀를 24시간 돌봐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푸르메재단은 올해 스마트팜에서 일할 발달장애 청년 16명을 추가 선발하는 등 모두 5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서울과 인접한 곳에서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발달장애인 농장을 추가로 건립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취업률 10%대 불과한 발달장애인 부모들
”어엿한 직장인돼 행복한 모습 오래가길”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아무리 재활치료와 학교 교육을 잘 받더라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다. (재배 기법 등) 전문적인 분야는 데이터와 기술로 보완하되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 발달장애 청년들이 일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주호씨 아버지 이종남(54)씨는 “발달장애 자식들을 둔 부모들은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한다. 끝까지 부모가 책임지려는 것인데, 어엿한 직장을 얻어 출근하는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오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용덕 기자
출처: http://www.hani.co.kr/arti/area/capital/9770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