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 대관령 목장에서 나눔의 백일장
정호승 시인, 대관령 목장에서 나눔의 백일장
푸르메재단, 1m당 1원 기부자 모임 한걸음의 사랑 2주년 기념 걷기 행사 개최
정호승 시인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시심이 절실한 시대”
“오늘 인생의 길을 걷는다는 기분으로 이 길을 걸어보세요.”
28일 오전, 가을 하늘이 짙푸른 강원도 대관령의 목장길 초입에서 정호승 시인이 백일장 참가자 1백여 명과 반갑게 만났다. 1미터를 걸을 때마다 1원을 푸르메재단에 기부하는 걷기모임 ‘한걸음의 사랑’이 창립 2주년을 맞은 날. 정호승 시인이 함께 한다는 소식에 평소보다 두 배가 넘는 인원이 관광버스 3대에 나누어 타고 참가했다.
출발에 앞서 정호승 시인으로부터 짤막한 강의도 들었다. 빗대어 표현하는 법, 자기만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담는 법 등 시 쓰기의 기초를 배운 이들에게 주어진 시제는 ‘길’과 ‘눈물’. 참가자들은 정호승 시인과 목장길 5킬로미터를 걸어 오르며 마음속으로 어루만진 시를 한 편씩 길어 올렸다. 알록달록하게 물든 산이 에워싼 드넓은 초원에는 양과 소, 말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목장 정상. 삼삼오오 통나무에 기대앉은 참가자들은 탁 트인 풍경을 내려다보며 시를 다듬고 종이에 옮겨 적었다. 시심에 흠뻑 물들었는지 모두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 참석자는 “삶에 치여 마음을 잃었던 아쉬움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두 시간 남짓 햇살과 바람, 나무의 냄새를 들이마신 사람들은 각자 한 편의 시를 손에 쥐고 처음 모인 장소로 걸어 내려왔다. 정호승 시인은 한결 밝아진 표정의 참가자들에게 “살기에 바빠서 시 쓰는 기회를 얻기기 어려운데, 여러분은 그런 기회를 스스로 획득한 분들”이라고 격려했다. 어린이 참가자가 여럿 포함된 수상작을 발표하면서는 동심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시인입니다. 특히 모든 어린이는 위대한 시인입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다 받아 적으세요. 전부 시입니다. 동심을 잃으면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요즘 시가 전통적인 서정성을 외면하고 난해한 수사로 흐르는 것 같아 무척 아쉽다는 시인. 내 삶을 보듬고 남도 돕겠다는 선한 사람들과 한나절 가을 길을 걷는 사이에 그 아쉬움도 조금은 풀어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