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삶을 건져 올리는 어느 화가의 '희망 그리기'
삶을 건져 올리는 어느 화가의 '희망 그리기'
2013-10-20
목석애 화백, 암환자·장애아동 캐리커처 그려주며 마음 나눠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붓 펜으로 몇 번 쓱싹 했는데 자기 얼굴이 나타나니까 딸 아이가 신기해하며 좋아하더라고요. 그림을 애지중지하며 자기 방에 붙여놨는데 보는 저도 흐뭇했답니다."
호스피스병동 암환자, 재활센터 장애어린이, 요양원 노인들의 얼굴을 그려주며 이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따뜻한' 화가가 있다.
'크레파스 조각화'로 유명한 목석애(56) 화백은 매주 푸르메재단, 성바오로병원, 수락요양원 등을 찾아 죽음을 앞둔 암환자나 장애아의 캐리커처를 그려준다.
그가 지난 7월부터 이곳을 다니며 그린 캐리커처만 수백 개. 환자나 아이들뿐만 아니라 늘 이들 곁을 지켜주는 가족이나 봉사자도 종종 그의 모델이 된다.
목 화백은 20일 "봉사를 나갈 때마다 3시간씩 20∼30명의 얼굴을 그린다"며 "얼굴을 그리다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전해져 한가족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30년간 순수미술 화가로 살아온 그가 이런 봉사에 나서게 된 것은 지난 7월 호스피스병동에서 만난 30대 여성을 그려주고 나서부터다.
위암 말기로 삶과 이별할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녀가 그림을 받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죽음을 앞두고도 웃는 모습을 떠올리니 도저히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더군요."
그는 캐리커처를 그리며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글귀를 그림 바로 밑에 써준다. 자신의 글귀로 위안을 삼았으면 하는 간절함에서다.
한번은 혈액암으로 투병하는 중년 남성에게 '나비처럼 훨훨 날아 많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글을 써줬는데, 이를 본 그의 가족이 통곡한 적도 있다.
목 화백은 "처음엔 어리둥절했는데 알고 보니 그날이 환자가 장기 기증서에 도장을 찍은 날이었다"고 떠올렸다.
사람들은 그가 '희망'을 그린다고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일로 자신이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오늘도 네 사람 이상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자고 다짐합니다. 저의 작은 수고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힘들어도 계속할 겁니다."
김보경 기자 viv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