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서경덕이 만난 사람 (7)가수 션

[서경덕이 만난 사람](7) 가수 션

2012-05-29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나눔, 행복 두 배죠"
요즘 청소년들은 '가수 션'은 모른다. 대신 '나눔 전도사 션'은 안다. 거대 연예기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의 1번 타자이자, 공중파 방송에 '힙합(Hip hop)'이라는 장르를 안착시킨 '지누션'에게 열광한 바로 윗세대들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이야기다. 얼마나 열심히 기부와 나눔을 실천했으면 그럴까? 무대에서 "넌 겁 없는 녀석이었어"('gasoline' 중)를 외치던 션은 요즘 세상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나눔과 봉사를 이야기한다. 지난 16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 온종일 인천과 청주를 오가며 강의를 하고 돌아온 션을 YG본사에서 만났다.
▲ 션은… 힙합 듀오'지누션'의 멤버. 1997년 1집'Jinusean'에 수록된'gasoline'과'말해줘'로 인기를 얻었다. 2005년 연기자 정혜영씨와 결혼, 2남2녀를 두고 있다. 부부가 함께 각종 봉사와 기부활동 에 앞장 서며 금슬좋은 모습을 보여줘 지난해'대학생 들이 닮고 싶은 부부'1위에 뽑히기도 했다. / 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사랑은 보고 배우는 것

서경덕(이하 '서'): 우선 '직구'부터 하나 던질게요. 요즘 친구들은 가수 션은 잘 몰라요. '션' 하면 나눔의 대명사가 돼버렸는데,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션: 그런 질문 많이 받아요. 부담스러우면 이렇게 못 하죠. 저는 정말 나눔을 '밥 먹는 것'과 같은 생활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히 생각하고 시작한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몸에 밴 거예요.

서: 그래도 계기가 있을 텐데요?

션: 아내(배우 정혜영) 덕분이에요. 결혼 1주년 되던 날, 하루에 만원씩 모은 돈을 아내와 같이 청량리 모처에 가서 기부했어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작은 걸 드렸는데 큰 걸 받고 온다"고 말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이 배가 됐어요. 나눔을 실천하면 받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나누는 사람이 더 행복해진다는 걸 둘이 같이 느낀거죠. 그때의 감격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서: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도 남다를 것 같아요.

션: 모두들 '우리 아이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들 생각하죠. 그래서 어디서든 아이가 1등이기를 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경쟁 구도가 아이들을 멍들게 한다고 생각해요. 1등이 되면 마냥 행복할까요? 내 아이 하나가 잘 되는 것보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좋은 세상이 돼야 내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행각합니다.

서: 엄마 아빠를 보면서 아이들이 배우는 게 많을 것 같아요.

션: 첫째 하음이랑 자선 패션쇼에 선 적이 있어요. 아이들 때문에 인터뷰는 하지 않을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주최 측에서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하음이한테 초콜릿을 사주면서 설득했어요. 그날이 하음이가 처음으로 초콜릿을 먹어본 날이에요. 그날 하음이한테 초콜릿을 세 개 줬어요. 인터뷰 끝나고 담당 기자분이 "하음아, 그거 맛있니? 언니한테 제일 작은 초콜릿 하나만 주면 안 될까?"하고 장난스럽게 물어봤어요. 그랬는데 하음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작은 건 맛 없어요. 이게 제일 크고 맛있어요"하면서 제일 큰 걸 주더군요. 그 어린 아이가 나눔을 시작한 거죠. 전 이런 게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션은 시종일관 밝은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나눔은 기적을 만드는 일

서: 기부활동과 관련해서 홍보대사로 굉장히 많이 활동하고 있잖아요? 요즘 가장 신경 쓰는 일은 뭔가요?

션: '만원의 기적'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장애아동 전문 재활병원을 만들기 위한 기부 프로젝트예요. 작년에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를 맡으면서 장애아동을 위한 병원 건립이 시급하단 걸 알게 됐어요. 병원 지으려면 320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더군요. 순간 머릿속에 번뜩 '한 사람이 하루에 만원씩 1년이면 365만원이니, 1만 명만 모으면 병원을 지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죠. 아내와 함께 먼저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빅뱅, 2NE1, 세븐, 싸이 등 우리 소속사 후배들뿐만 아니라 야구선수 박찬호, 김태균, 류현진씨도 참여하고 있어요. 다들 흔쾌히 도와주시겠다더군요.

서: 그런데 하루에 만원은 일반인들에겐 큰돈인데요.

션: 적지 않죠. 큰돈이에요. 그래서 만원의 기적은 기업이나 유명 인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일반인 대상으로는 '천원의 기적'과 '만원의 기적 주니어'를 제안했어요. 딱 100명만 모집할 생각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렸는데, 8시간 만에 다 모였어요. 특히 학생들의 반응이 놀라웠어요. 한 달에 용돈 3만원 받아쓰는 학생이 '만원의 행복 주니어'에 참여하면서 매달 만원 씩 기부해요. 그러면서 오히려 저한테 '기부를 시작하게 도와줘서 감사합니다'라고 트윗을 보냈어요.

서: 수입의 3분의 1을 기부하는 셈이네요. 액수도 액수지만 어린 학생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놀랍네요.

션: 그렇죠. 청소년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병원이 지어지면 참여한 청소년들은 자기들의 작은 나눔이 병원을 만드는 기적을 보게 되겠죠. 그들이 성장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눔을 실천할 거예요. 이 모든 과정이 바로 기적입니다.

서: 어린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계신대요, 정작 본인의 청소년 시절은 어땠나요?

션: 어렸을 때요? 어…, 이거 참…. 마구 달렸죠.(웃음) 16살 때 가출을 했어요. 돈이 없어서 굶어보기도 했고, 잘 곳이 없어서 헤맨 적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그때의 경험 때문에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된 것 같아요. 배고프고 갈 곳 없었을 때 사람들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도와줄게''나중에 좋은 집 사면 너 재워줄게' 했더라면, 그때 저는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겠죠. 그러니까 나눔은 기다리면 안 돼요. 지금 당장 필요하니까 당장 시작해야 하는 거죠.

김구용 에듀&라이프 기자 kky902@chosuned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