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는 "미국에 살다 한국에 들어와서 1년 동안 했던 진료가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1984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1년 동안 척수손상 환자의 재활치료를 담당했다.
"미국에서 배운 의술로 한국 환자를 치료하려 했는데 결과는 절망적이었어요.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가 없는 거예요. 여건이 나은 미국에서도 환자가 줄을 섰는데…. 주변에서 '중증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큰 병원까지 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깨달았죠. 훌륭한 의사와 시설을 갖춘 큰 병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재활이 시작되지 않고선 의미가 없다는 걸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아주대 재활의학과장으로 외래 환자를 돌보던 이 교수는 자신의 지론을 제자들에게 설파하는 동시에 척수손상 환자들의 자조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에 나가 환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진료가 끝난 뒤에는 직접 차를 몰고 병원에 오기 힘든 환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는 방문 진료도 했다. 이 교수는 "정년 퇴임 뒤에는 낮은 곳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준비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과천시장애인복지관으로 출근해 환자 무료 봉사뿐만 아니라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푸르메재단의 민간 재활병원 건립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가 바라는 이상적인 재활병원을 짓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남은 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있다고 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사회에서 문제 없이 섞여 살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누구든 장애를 갖더라도 남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얻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재활이 완성되는 거죠. 과천장애인복지관을 그 모델로 만드는 게 제 마지막 소명이 아닐까요?"
석남준 기자 namju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