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구조에서 사회단체들은 이른바 ‘뒷문 기부’에 큰 기대를 걸게 된다. ‘뒷문 기부’라는 말은 정식적인 제안과 검토와 실행으로 이뤄지는 기업사회공헌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은 기부 활동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령 인지도가 높은 사람을 홍보대사 등으로 영입해 ‘이미지’에 집중된 관심을 기부로 유도하는 경우가 이른바 ‘뒷문 기부’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착한 일 하기’로 공언하는 일이 꼭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기업이나 전문 소득자들에 비하면 분명 좋은 시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뒷문 기부’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쉽게 치유할 수 없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책임’은 더 이상 기업전략이 아니다. 그저 ‘좋은 일을 하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활동은 지속 불가능하다. ‘자선’은 이제 흔한 상품이 됐다. 사회문제는 더 이상 정치나 복지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이미 비즈니스 이슈가 됐다. 기업은 정부보다 거대하고 소비자는 시민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문제 해결은 기업에 더 이상 ‘선택’의 사항이 아니다. 시장은 포화됐고, 경쟁자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만 가며, 세상의 재화는 한정돼 있다. 이런 고민이 고령화, 저출산, 양극화, 불평등, 사회적 소외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연관 짓는 순간, 기업은 ‘사회공헌활동’을 넘어 서서 ‘사회혁신활동’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세상 사람 모두가 ‘형님’ ‘아우’처럼 좋은 관계를 형성한다면 더 이상 바랄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만이 특별한 관계를 원한다면, 상식과 원칙은 깨져 버리고, 그 판마저 위축되고 작아지게 마련이다.
기업은 사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익창출을 극대화하고, 사회는 새로운 시장을 기업에 제공함으로써 부족한 재화와 역량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그저 ‘나쁘지 않다’는 것만 증명할 뿐이다. 선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바꾸고 변화하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박철웅 < 푸르메재단 모금사업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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