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돈 많이 벌겁니다 더 많이 기부하게”
[기적을 부탁해]"돈 많이 벌겁니다 더 많이 기부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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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마비 딛고 게임회사 CEO 이철재 대표 10억 원 기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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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간 재활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오니, 정말 막막했어요. 사고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도 못해 공식 학력은 중졸이었지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뉴로사이언스(신경과학)과에 원서를 냈더니, 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장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연락이 왔다. 그는 담당자에게 자신이 그 학과에 왜 꼭 진학해야 하는지 설득해 입학할 수 있었다. "제 상태를 알고 싶었고, 나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한 끝에 당시로서는 불가능하단 걸 알았지만요."
고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도전'이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서는 젊은 대학생들이 정보기술(IT)벤처회사를 만드는 것이 붐이었다. 작은 사무실을 차리고, 카드게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괴물을 육성해서 괴물끼리 싸움을 붙이는 게임도 만들었는데 생각만큼 잘 되진 않았어요. 정말 괜찮은 게임이었는데…" ○ "온 동네를 쏘다니라"던 어머니 사고를 당한 후천적 장애인의 경우 심리적으로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장애를 부인하고, 화를 낸다. 좌절했다가 다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을 두고 이 과정을 반복하며 괴로워한다. 잊었다고 생각하면, 다시 찾아온다. 이 대표이사는 "기댈 곳이 없는 타지에 있었기 때문에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남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세수에서부터 옷 입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빨리 준비했다. 사람 모이는 곳에도 일부러 열심히 나갔다. "제 별명이 '모세'였어요.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에 가면 휠체어를 타고 중앙으로 나가니까, 붐비던 스테이지가 홍해를 가르듯 열렸거든요." 2000년 한국으로 들어온 뒤 그의 어머니는 "택시를 타고, 서울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녀라"고 당부했다. 휠체어를 타는 아들을 택시운전사들이 많이 옮겨볼수록 또 다른 장애인을 만났을 때 더 잘 대할 수 있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 "나누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게임회사를 운영하면서 도전했던 또 다른 사업은 유아상품몰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저출산 때문에 "아이 관련 사업은 다 망한다"는 속설이 떠돌 때였다. 아이를 적게 낳으니 고급 상품을 만들어 비싸게 파는 대기업이 많았다. 여자아이 옷만 잔뜩 팔고, 남자아이 옷은 구색으로 갖춰 놓는 브랜드들도 있었다. 그는 "남자아이 엄마들도 분명 아이를 예쁘게 꾸미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말했다. 그가 개발한 '알로앤루' '포래즈'는 대표적인 국산 아동브랜드로 성장했다. 이 대표이사는 "돈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더 벌고 싶은 욕심은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이 기부하고 싶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푸르메 어린이재활병원을 응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미국 사람이 아닌 자신도 미국 주정부의 각종 지원프로그램의 혜택을 수없이 받았는데, 한국도 아이들이 좀 더 좋은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 아직 푸르메 어린이재활병원이 건립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1층 로비에 걸 그림을 준비해 놓았다고 한다. "색채가 밝고, 보고 있으면 따뜻한 느낌이 드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보고 아이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네요."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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