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신경숙 작가 “아픈 자식 숨겨야하는 슬픈 한국”

[어린이재활병원 응원합니다]
신경숙 작가 “아픈 자식 숨겨야하는 슬픈 한국”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오래전, 친구가 아이 둘을 데리고 캐나다로 떠났다. 5년 후에 돌아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을 떠난 지 1년도 되지 않아 큰아이가 큰 병을 앓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친구가
아이를 데리고 급히 귀국할 줄 알았다. 그러나 친구는 아예 귀국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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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곧 친구가 아픈 아이를 데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친구는 그동안 열 손가락이 넘는 숫자의 큰 수술과 셀 수조차 없는 작은 수술들, 언제 끝날지 모른 채 끊임없이 반복되는 재활치료를 캐나다 병원들의 지원과 봉사 속에서 계속 받았다. 아이가 아프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엄마에게만 맡기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는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덕분에 친구의 아이는 언제 재발을 할지도 모르고 앞도 보이지 않는 장애를 지닌 채로지만, 5개 언어를 익히고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청년이 되었다.

지금 보통 선진국에서는 인구의 10% 정도가 장애인이고, 어린이 중 10%가 장애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인은 5%이고 그중 어린이는 1% 미만이다. 선진국보다 수가 적은 것은 학교에 갈 경우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게 될까 봐 장애등록을 기피해서라고 한다. 어떤 경우엔 부모가 아이의 장애를 부끄럽게 여겨 집에 숨기기까지 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다.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기였을 때 고열이나 경기 혹은 기침으로 시작해 시신경이나 청각신경 등을 다쳐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바로 집중 치료를 받으면 80, 90%의 기능이 회복되는데도 무관심과 무지로 그 시기를 놓쳐 일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해보라. 30만 명이 넘는 국내 장애 어린이의 30%가 지속적인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전국적으로 어린이 재활병원이 손에 꼽을 정도라니…. 내 친구가 아픈 아이를 데리고 타국에서 돌아오지 않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늦게나마 서울 마포구에서 3215m²의 터를 내놓아 어린이재활 전문병원을 건립할 예정이다. 종로구 효자동에도 3500명의 시민이 힘을 모아 어린이재활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집이든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으면 그 엄마의 하루가 어떨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안다. 그 엄마들은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인 듯 살아도 시간이 모자라다. 그 아이에게만 집중적으로 매달리니 다른 가족으로부터도 멀어져 엄마와 장애를 가진 아이만 남게 되는 슬픈 일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좋은 사회인지 아닌지는 약자들이 어떤 배려를 받는가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아픈 아이를 지금까지처럼 계속 엄마 손에만 맡겨 놓아도 될까. 제도 자체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주는 그런 날을 기대해본다. 그래서 아픈 자식 때문에 아직도 타국 생활을 하고 있는 내 친구가 안심하고 돌아올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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