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한국같이 발전한 나라가 정형신발 없어 고생하는 장애인이 이렇게 많다니
"한국같이 발전한 나라가 정형신발 없어 고생하는 장애인이 이렇게 많다니…"
2011-05-05
독일의 '신발 장인' 쉐퍼씨
"왼발이 안쪽으로 많이 무너져 있는 상태라 발 뒤꿈치를 단단하게 잡아줄 수 있는 신발이 필요해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신발제조업체 측정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슈마이스터(독일 정부 공인을 받은 신발장인) 에발트 쉐퍼(53)는 뇌성마비 장애로 왼쪽 발이 굽어 있는 이채린(8)양의 발을 두 손으로 잡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정형(整形)신발을 만들어 주기 위해 채린양을 포함한 5명의 장애 아동 발을 정밀 측정했다.
신발은 두 달 뒤 완성된다.
정형신발은 발에 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발 변형 진행을 막고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특수제작한 신발이다. 뇌성마비 등으로 발에 기형이 생긴 장애인들이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도와준다.
▲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신발제조업체에서 특수신발 제작 전문가인 에발트 쉐퍼(53)가 뇌성마비로 심하게 굽은 이채린(8)양의 왼쪽 발을 살펴보고 있다. 채린이는 지능이 떨어지고 말도 하지 못하지만, 파란눈의 아저씨가 새 신발을 만들어 준다는 걸 알고 환한 웃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대신했다. /한상혁 기자
hsangh@chosun.com
이 신발 제조업체는 2008년 3월부터 2010년까지 쉐퍼가 만든 정형신발과 깔창을 100여명의 성인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왔다. 올해부터는 의료복지법인 푸르메재단에서 선정한 40명의 저소득층 장애아동들에게도 신발을 공짜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정형신발로 발의 모양을 잡아주지 않으면 발의 기형이 심해지고 관절이 굳어버려 영영 걷지 못하게 된다"고 건의했기 때문이다.
정형신발은 가격이 비싸다. 발 모양을 스캐너를 이용해 정밀 측정한 후 숙련된 기술을 가진 장인이 만들어야 해 켤레당 100만~200만원이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에서 장애인 1인당 주는 정형신발 지원금은 연간 최대 22만원에 불과하다.
뇌성마비, 지적장애, 자폐 장애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5만여 명이 매년 1인당 3~4켤레의 정형신발을 필요로 하지만 작년 구입비용을 지원받은 18세 미만 청소년은 500여명에 불과하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지원받는 액수보다 호주머니를 털어 내야 할 돈이 많아 아예 지원을 안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쉐퍼는 "독일에서는 3000여명의 신발장인이 2500여개의 업체에서 의사 처방에 따라 환자들에게 정형신발을 만들어 공급하기 때문에 보편화 돼 있다"고 말했다.
쉐퍼는 3대째 이어지는 장인 집안에서 태어나 36년째 정형신발을 만들고 있다. 2008년 1월부터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한국같이 발전한 나라에 정형신발이 없어 기형을 방치·악화시키는 장애인이 많은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상혁 기자 hsang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