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저의 기적, 작은 천사들에도 전해지길”
[건강2.0] 발달장애 전문 한의사 허영진씨
어릴적 장애…한방으로 회복…미숙아는 1살까지 잘 살펴야
푸르메재단서 장애아들 진료…한달 600만원 약값 ‘해결과제’
권복기 기자
» 한의학은 침, 약, 수기 등으로 발달 장애를 치료한다. 허영진 원장이 4일 오전 서울 효자동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를 찾은 어린이의 머리에 침을 놓고 있다.
허영진(41) 삼정한의원 원장은 발달 장애 어린이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한의사다. 허 원장은 2000년 개원뒤 10년 넘게 줄곧 그 길을 걸어왔다. 그는 한의원을 찾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작은 천사들이 엄마와 아빠를 구분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혼자 서고, 걷고, 뛸 수 있게 되어 독립생활을 하는 것을 꿈꾼다.
허 원장이 장애 어린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태어난 지 9달이 되던 때 경기를 일으키고 나서부터 장애 증세를 보였다. 돌이 지나 혼자 서고 걸어야 할 나이에 그는 목을 가누지도 못한 채 누워 지냈다. 백약이 무효였다. 그런 그가 목발에 의지해 자유롭게 다니고, 인지능력을 회복해 한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의학 덕이었다.
“한 할아버지 한의사로부터 침과 약 위주의 치료를 꾸준히 받은 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그는 한의대에 다닐 때부터 장애 치료와 관련된 분야에 마음이 많이 갔다. 한의학에서는 발달이 늦은 것을 다섯 가지 지체, 즉 오지(五遲)라 했다. 말이 늦고, 걸음이 늦고, 똑바로 서지 못하는 것 등을 일컫는다.
언어치료, 학습치료, 작업치료 등을 통해 치료하는 서양의학과 달리 한의학에서는 지의 원인을 오장육부 기능의 부조화로 보고 약한 장부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발달이 늦은 아이들을 치료한다. 그는 머리에 침을 놓는 두침, 산삼과 봉독을 활용한 약침, 오장육부와 관련된 주요 혈자리를 마사지하는 수기 등을 치료법으로 쓴다.
» 허 원장이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재활센터를 찾은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허 원장은 발달 장애를 치료하면서 희망적인 사례를 만날 때면 기분이 좋다. 청각 장애와 함께 혼자 앉기조차 어려웠던 두 살배기는 1년가량 치료 뒤 혼자 걷고 와우관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다운증후군으로 지적 장애 3급 진단을 받은 또다른 두 살배기는 지적 장애 등급을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만 세 살이 넘었지만 염색체 이상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던 아이는 6개월가량 치료 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감정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발달 장애는 치료가 쉽지 않은 분야다. 허 원장은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부모들 가운데 기다려보라는 주위의 말을 따랐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숙아로 태어나거나 경기, 호흡곤란 등의 증세를 보였던 아이들은 12개월까지 발달 상황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돌이 지났음에도 앉지 못하거나 손과 발에 지나치게 힘을 주거나 손발의 좌우 대칭이 어긋날 때는 전문기관을 찾아가 정밀한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허 원장은 치료받을 때를 한참 지나 한의원을 찾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틈만 나면 자원봉사를 나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조기 치료’를 위해서다.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곳은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 재활병원 설립을 추진중인 푸르메재단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장애어린이를 위해 운영하는 곳이다. 2007년 문을 연 뒤부터 지금까지 그는 주4일 오전을 이곳에서 보낸다. 한의원에서 진료하는 시간에 버금간다.
“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푸르메재단이 운영을 책임지고 있고, 약침협회에서 매달 200만원씩 후원해줍니다. 그럼에도 한 달에 600만원가량 되는 약값을 마련하기가 쉽지는 않은가 봐요.”
이곳에서의 진료도 성과가 좋다. 정아(3·가명)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혼자 앉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센터에 오면 뛰어다닌다. 뇌병변장애로 경기가 심했던 민수(6·가명)는 6개월가량 치료를 받은 뒤 증세가 크게 나아졌다. 희망을 잃지 않는 부모들은 서울은 물론 경기와 강원에서도 센터를 찾는다. 강원 홍천에서 주 2회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오가는 김영이(가명·37)씨는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째 치료를 받고 있다”며 “다리에 힘이 조금씩 붙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 원장은 발달 장애의 한방 치료에 대한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자신이 치료약으로 쓰고 있는 공진단이 신경안정인자의 분비를 유도해 뇌신경보호와 학습능력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해 12월 <뉴로사이언스 레터스>에 실렸다.
“발달 장애 어린이를 치료하는 기관이 많이 생겨 모든 아이들이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때가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