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화상 극복하고 두 번째마라톤 완주한 이지선 씨

화상 극복하고 두 번째마라톤 완주한 이지선 씨 소외된 이웃에 '희망 선물' 할래요

재활병원 기금모금위해 동참
피부호흡 못해 힘들지만 뿌듯
"미리 걱정해 포기하는 일 없길"

2003년 저서 ‘지선아 사랑해’를 통해 진정한 희망과 행복의 의미를 보여준 이지선 씨(32세)가 미국 유학 중 잠깐 한국을 찾았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자격으로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위한 기금 모금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서울국제마라톤대회를 이틀 앞둔 19일 이 씨를 만났다.

▲ 장애인을 위해 마라톤을 뛰는 화상 천사 이지선 씨. 그는 “나와 똑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이번이 두 번째 마라톤 도전이죠?

“전부터 꼭 한번 마라톤을 뛰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지난해 재단에서 제의가 들어왔었어요. 병원 건립을 위한 기금 모금도 돕고, 장애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서 작년 11월 1일 뉴욕시민마라톤에 참가했지요. 7시간 22분 만에 결승선에 들어왔어요.”

-힘들었을 텐데 뛰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화상 흉터 때문에 피부 호흡이 잘 안 되니까 달리는 게 일반인들보다 몇배는 더 힘들 거라고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뛰다가 안되면 지하철 타고 오겠다’며 교통카드를 챙겨 출발했어요.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걱정하면서 미리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근데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운동을 해본 적 없는 두 다리는 빠질 듯이 아팠고요. ‘1마일만 더 가자’는 생각으로 몸을 움직였어요.”

-결승선에 들어올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눈물이 났죠. ‘못할 줄 알았는데, 내가 정말로 해냈구나!’하는 생각에 벅찼어요. 그러곤 아파서 한 달 동안 누워지냈어요.(웃음)”

이지선씨는 이화여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0년,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승용차로 귀가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음주 운전자가 이씨가 타고 가던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차는 불타올랐고 이씨는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의사들조차 생사를 장담하지 못했다. 11차례의 수술과 고통스러운 화상 치료과정을 견뎌내고 새 삶을 찾은 이씨는 사고 당시의 기록을 담은 저서 ‘지선아 사랑해’를 펴내면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2005년부터는 화상환자와 장애환자를 위해 재활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도 완주할 자신이 있나요?

“자신 없어요. 하지만 마지막 한 발자국 걸을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보려고요.”

이씨는 21일 열린 대회에서 6시간 47분의 기록으로 42.195km를 완주했다.

-대회가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가나요?

“11일 한국에 왔는데, 학교 수업 때문에 대회 다음 날인 22일 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해요.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거든요. 5월에 졸업하면 곧바로 박사 과정을 밟을 계획이에요. 2개 대학에 지원했는데 UCLA에는 합격했고, 다른 한 군데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사고 후 퇴원하고서 디지털카메라를 하나 샀어요. 죽었다 다시 살아나니 세상 모든 게 예뻐 보이고 소중하게 느껴져서 모두 카메라에 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생각했죠. ‘감사하면서 살자, 다른 사람을 위해 살자’라고요. 공부가 끝나면 한국에 돌아와서 어려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을 오늘도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가는 이지선 씨. “마라톤 하면서 가장 힘이 됐던 건 주변의 ‘응원’이었어요. 곧 쓰러질 것 같다가도 나를 응원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거짓말처럼 힘이 솟았지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이 많이 응원해주세요.”

푸르메재단 후원 문의 (02)720-7002

/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