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한국 거리에는 왜 장애인이 없을까?
장애인천국을 가다.
백경학 외 지음ㅣ논형ㅣ248쪽ㅣ1만4000원
2006년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한국에서 '살아있는 비너스'로 알려진 영국의 앨리슨 래퍼를 만났다. 그녀는 팔다리가 짧고 힘이 없는 해표지증(海豹肢症)이라는 희귀질환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굴하지 않고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였다. 손발이 훤히 드러나는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불쑥 물었다. "한국의 장애인들은 어디 있나요? 한국에 온 지 사흘이 지났는데 거리에서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백 이사는 유럽과 일본의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같은 재단의 전미영 사무국장, 임상준 팀장과 함께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본으로 날아갔다. 재활병원 및 장애인시설을 둘러본 뒤 그 생생한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묶었다.
취리히 어린이재활병원에 들어서자 사람보다 덩치가 큰 갈색 곰 한 마리가 인사를 했다. "어린이들에겐 병원이 아니라 유치원과 학교 같은 곳이에요." 어린이 작업치료실은 진료실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놀이터나 장난감방 같았다. 스프링을 이용해 매트리스를 매단 그네와 여러 기구들은 아이들에게 놀이기구나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균형을 잡고 근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모리노미야 병원은 뇌졸중 환자를 위한 병원이다. 351병상 규모에 재활전문의사가 17명, 치료사는 161명으로 치료사의 수가 병상 2개당 1명꼴이다. 이 병원 이치로 부원장은 "앞으로 치료사를 50명은 더 충원해야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숲 속에서 환자가 안정을 찾는 교통사고 전문병원도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 외곽에 있는 바이서호프 교통사고 전문병원은 빽빽이 하늘을 가린 전나무 숲 한 가운데에 중세의 성처럼 우뚝 솟아 있다. 일본 고베에 있는 빵집 클라라 베이커리는 모든 빵을 110엔에 판다. "계산 담당인 고니시씨는 신체장애와 지적장애를 동시에 갖고 있는 중복 장애인인데 그가 계산하기 쉽도록 배려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장애인학교에 가면 몸무게가 3.5㎏에 불과한 8살 소년 크리스티앙이 제 또래 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학교 로이더 교장은 "비장애인 학생들이 장애인 학생을 잘 도와주냐"는 질문에 "도움 없이 해야 된다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비장애인 학생들이 장애인 학생과 어울리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내게 한다는 얘기다.
김경은 기자 eu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