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획연재 ① 떠도는 장애인들 - 석달마다 이 병원 저 병원…‘부활 꿈’ 꺾
석달마다 이 병원 저 병원…‘부활 꿈’ 꺾는 재활시스템
장애인들이 재활병원을 찾아 떠돌고 있다. 제대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부족한데다, 병원을 찾았다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건강보험 적용 비율이 낮아져 다른 병원으로 옮겨갈 것을 종용받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도 선진국처럼 짧은 기간에 집중적인 재활치료와 일상생활 적응 훈련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통합적인 재활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의 재활치료 현실과 선진국 사례, 대안등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뇌성마비 아들의 재활치료를 위해 지방의 한 복지관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시작해, 서울의 큰 병원들까지 모두 다녀 봤습니다. 오래 있으면 병원에서 퇴원을 하라고 하니까요. 지금 치료받는 병원도 마찬가지겠지요.”
3살 때 뇌성마비에 걸린 아들(11)의 재활치료를 위해 지난 4월 전북에서 경기도의 한 재활병원으로 올라온 이아무개(56)씨는 한숨과 함께 눈물을 훔쳤다. 아들이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지 얼마 뒤 남편이 숨진데다 아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이씨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자연히 시골의 집과 논밭을 모두 팔았고, 소득이 없어 어느새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됐다. 이씨는 “아들이 잘 걷지도 못하고 손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지만, 말도 좀 하고 컴퓨터 자판을 누를 수 있어 의사표현에는 문제가 없다”며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도 잘해, 전교 10등 안에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 국내 한 재활병원에서 환자들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이 병원처럼 시설이 잘 갖춰진 재활병원은 매우 적어,
치료를 받으려면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씨는 지금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 기초생활 급여로 한 달에 45만원가량 나오는데, 의료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치료가 많아 대부분이 병원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들이 수영이나 언어치료를 받으면 몸의 움직임이나 언어 표현력이 확실히 좋아진다”며 “하지만 한 번에 3만5천원씩이나 하는 언어·음악·수영치료 등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 ㅅ병원에 입원중인 장애 1급 유아무개(65)씨는 벌써 10번째 병원을 옮겼다. 정원사였던 유씨는 5년 전인 2004년 8월 나무에서 떨어져 등뼈를 다친 뒤 걷지 못하게 됐다. 그는 석 달에 한 번씩 병원을 바꿔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재활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기간이 정해져 있는 탓에 한 병원에서 오래 머물 수 없다. 같은 물리치료를 해도 처음 3달 동안은 건강보험에서 치료비의 100%를 인정해주지만 그다음부터는 보험수가가 일정 비율씩 줄어든다. 당연히 병원에선 3달 이상 된 환자를 기피하기 마련이다.
병원을 찾아다니는 것도 고역일뿐더러 병원을 옮길 때마다 피검사 등 똑같은 검사를 반복해서 받아야 하는 것도 어렵고 화나는 일이다. 유씨는 “시설이 좋은 재활병원은 기다리는 시간만 몇 달”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치료를 하는 방법도 고민해 봤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는 “휠체어가 자유롭게 드나들 정도로 화장실이 넓어야 하고, 운동기구를 설치하려면 비용도 많이 들어 힘들다”며 “치료사도 불러야 하는데 그 비용이 엄청나다”고 했다.
사람들은 ‘어차피 걸을 수 없는데 돈과 시간을 들여 꼭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느냐’고 말한다고 유씨는 전했다. 그는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리가 서서히 굳어져 가는 것을 생생히 느낀다”며 “예전처럼 다시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설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비장애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어서기가 유씨에겐 삶의 목표다.
장애인 50% 치료 못 받고 있다.
병원 못가는 이유 "돈이 없어서" 57%
우리나라 장애인의 절반가량은 자신이 가진 장애에 대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08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장애인 7천명 가운데 자신이 가진 주된 장애에 대해 치료를 받고 있는 이들은 50.5%에 그쳤다.
또 최근 1년 동안 수술이나 치료 목적으로 병·의원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사람은 22.1%로 나타났다. 병원에 가지 못한 이유는 57.3%가 ‘돈이 없어서’라고 답했으며, ‘갈 수 있는 시간에 병의원이 문을 열지 않아서’(13.8%), ‘교통이 불편해서’(12.8%)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의료서비스로는 '재활전문병원의 설립’이 29.7%로 가장 많았다. 2005년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팀이 장애인 3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장애인들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로 가장 먼저 꼽은 것은 ‘경제적 부담’이었다. 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장애인들이 경제적인 제약, 이동의 어려움 등으로 적절한 의료서비스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한겨레] 기획연재 <장애인, 재활이 희망이다.>
|
|
1. ① 떠도는 장애인들 - 석달마다 이 병원 저 병원… ‘부활 꿈’ 꺾는 재활시스템 |
2009-09-02
|
2. ① 떠도는 장애인들 - 환자의 경제상황 맞춘 다양한 전문병원 |
2009-09-02
|
3. ② '스위스 마비센터' 재활프로그램 - ‘하반신 마비’ 마틴, 휠체어 경주 ‘제2의 삶’ 꿈꾼다 |
2009-09-03
|
4. ② '스위스 마비센터' 재활프로그램 - 혈관질환도 예방적 재활 필요 연금보험사 인수로 활로 찾아 |
2009-09-03
|
5. ③ 60만 재활에 병상 4200개…전문병원 확충이 ‘첫 단추’ |
2009-09-04
|
6. ③ ‘최고의 재활병원’ 푸르메재단의 실험 |
2009-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