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NGO칼럼 - 꾸준한 한방치료로 장애 벗어

꾸준한 한방치료로 장애 벗어

이재원 (푸르메재단 간사)

“마음속에서 수도 없이 경민이를 죽였습니다. 아이가 제 인생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요. 어떤 날은 아파트 13층에서 떨어뜨리는 상상을 하고, 다음 날은 물에 빠뜨려 죽이는 상상을 했죠.”

몇 년 전, 한 엄마가 자신이 낳은 아들을 두고 마음에 품었던 생각들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토끼 같은 두 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그녀였다. 뒤늦게 본 늦둥이 막내아들, 경민이의 귀여운 재롱은 그녀가 소유한 행복한 일상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태어난 지 2년 만에 발견한 아들의 장애, 다운증후군은 엄마, 아빠를 순식간에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경민이를 ‘사람’으로 대한 한방재활센터

경민이 엄마 우단희씨는 병원에 가서 염색체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한달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아닐 거야’ 하는 위로와 ‘맞을 거야’ 하는 절망을 반복하며 하루에도 몇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결국 경민이는 ‘지적장애3급’으로 판정받았다. 단희씨는 “집을 나서기 두렵고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고 창피하다는 생각도 머리에 가득했어요. 나름대로 사회에서 이루어 놓은 것도 있었고 소박한 꿈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한 순간에 다 무너지더군요”라고 전했다. 솔직한 이야기다. 아마도 누구나 이런 상황에 처하면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엄마 단희씨에게 경민이는 너무 예뻤다. 생김새는 다른 아이들과 약간 다르지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분명히 살아 숨쉬는 생명이었다. 엄마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오만과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니 세상이 달리 보였고 겸손해질 수 있었다. 경민이의 장애가 더 심하지 않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부모 모임에도 가입하고 아이를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다 만난 것이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다.

원장 허영진 한의사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혼자 힘으로는 걸어 본 적이 없는 지체장애인이다. 단희씨는 한방으로 장애 어린이를 치료한다는 것이 생소했고, 비현실적인 기대는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기에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한의사 본인이 장애인이니 장애인의 마음을 잘 알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10년 가까이 장애 어린이만 치료해왔다는 사실에도 신뢰가 생겼다. 허영진 원장님은 치료실에서 아이를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거의 씨름을 했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단순한 치료 ‘대상’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을 ‘사람’으로 대했다.

그렇게 한방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일년이 넘었다. 그동안 경민이에게 변화가 있었다. 다리에 힘이 많이 생기면서 보행이 안정되어 배꼽인사도 잘하고 밖에서 놀 때도 잘 걷고 뛰게 됐다. 체형이 단단해지면서 키도 많이 컸다. 말도 조금씩 늘어 짧은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했다.경민이의 변화를 오로지 한방치료에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경민이는 다른 치료는 받지 않고 오로지 한방치료만 받아왔다.

법적인 장애 범주에서 벗어나

며칠 전 경민이에게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2년 만에 받은 장애판정 검사에서 경민이가 법적 장애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의사의 판정을 들은 것이다. 장애인복지법은 지적장애의 기준을 지능지수 70으로 잡고 있다.

1년 전 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받기 전에는 60점대였던 경민이의 점수가 이번 검사에서는 75로 나왔다. 이렇게 장애 범주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500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드문 경우다.

오늘도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에 나오는 엄마들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내 아이가 걸을 수 있다면. 말을 할 수 있다면. 조금만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각자 마음 속에 품은 생각은 다르지만, 이들이 가는 길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