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이은미가 만나고픈‘친구 같은 의사들’

<내가 만난 의사> 이은미 (가수)

글 김민아 기자 licomina@docdocdoc.co.kr, 사진 김형진 기자 kimc@docdocdoc.co.kr
등록 : 2009-04-28 14:12

음악이 발표된 지 하루 만에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빈번해진 요즘, 그만큼 가수들은 가수 노릇 하기가 어려워진다. 신곡을 빨리 알리지 않으면 바로 사장된다. 그런 상황에서 이은미의 신보 ‘소리 위를 걷다’에 대한 반응은 예외적으로 뜨겁다.

 

소녀시대나 카라처럼 깜찍하지도 않고, 이효리나 아이비처럼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것도 아닌, 데뷔 20년차인 이은미는 다만 열정적인 목소리로 사랑받는 흔치 않은 여자 가수다. 그런 이은미가 낸 이번 음반의 대표곡인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음원공개 하루 만에 1위에 차지하는 등 중견 가수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그를 부르는 무대도 많아져 요즘 이은미는 무대에서 무대로 정신없이 옮겨 다닌다.

 

예능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거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팔지 않아도 이은미가 통하는 이유는 가수 본연의 역할에 가장 충실한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음악과 무대만 생각한다는 이은미가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나섰다. 그가 얼굴을 비춘 곳은 얼마 전 열린 푸르메재활병원 건립 선포식. 푸르메 재단은 지자체와 기업, 시민이 함께 참여해 민간 재활전문병원을 건립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공익재단으로, 이번 자리는 재활병원 건립을 선포하는 하는 자리였다. 이은미는 이 자리에서 아나운서 나경은, 산악인 엄홍길 등의 유명인사와 함께 푸르메병원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이미 각종 자선공연 무대에 기꺼이 서기를 자청하는 그인지라 이 자리에 이은미가 서 있는 것도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었는데, 한창 활동으로 바쁜데다가 18일부터 시작되는 전국투어 공연이 있는 만큼 마음은 편하지 않을 터. 선포식이 끝나면 방송 녹화를 위해 뛰어가야 한단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전문 병원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흔히 이런 행사들이 깃발 하나 세우는 것으로 끝나기도 하는데, 홍보대사가 된 만큼 노력을 좀 해보려고요. 그걸 위해 좀 수다스러워지려고 하니까 여러분들이 관심을 좀 가져 주셨으면 해요.”

전국 콘서트 시작합니다!

 

원래는 특수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대신 엉뚱한 직업을 갖게 된 거죠”하며 웃는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이번 홍보대사 활동은 그만큼 기꺼운 일.
“대중음악가니까 많은 분들의 사랑으로 먹고 살잖아요. 그것을 돌려드리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는데 제의가 들어온 거죠. 예전에 녹색병원 개관할 때도 무대에 서면서 굉장히 기뻤는데 곧 있을 푸르메병원 개원식 때도 그 무대에 서서 기쁨을 맛보고 싶네요.”

 

그는 지금 부산, 서울, 대구 등 전국 20개 지역을 도는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콘서트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 시기. 밀린 방송 때문에 공연준비를 못해서 걱정이 태산이란다. 700회 이상 공연에 단련된 ‘디바’에게서 공연 때문에 초조하다는 말이 나오다니 약간은 의외인데, 그는 공연은 할수록 어려워진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공연이고 음악이고, 매번 할 때마다 어려워져요. 공연이라는 게 매번 준비한 대로 훌륭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스태프들하고 고민해서 준비 중이에요. 뒤로 갈수록 좋아지는 명품 공연으로 만들어야죠.”
누구보다 열정적인 무대공연으로 알려진 그인 만큼 장기간 공연을 앞두고 체력관리를 시작했을 듯도 한데 그는 “체력관리는 평소에 한다”는 정답을 내놓는다.

 

“평소에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지 않으면 콘서트는 굉장히 힘든 작업이에요.
또 저는 솔리스트이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부담도 많이 되죠. 하지만 다행히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요, 운동하고 맛난 것 먹고 밴드하고 음악적 교감 나누려 애쓰는 거죠.”

제 직업인 걸요, 뭐

 

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공해 때문에 뿌연 창문 밖을 한동안 응시하더니, “여기는 시야가 흐리지만 산에 올라가면 공해가 안보일 걸요. 흐릿하게나마 북한산이 보이니까 오르고 싶네요” 한다.

 

산은커녕 실내 암벽 등반 연습실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못가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 행사장에서 만난 엄홍길 대장은 더 없이 반가운 사람이었다고.
운동, 특히 등산으로 평소 건강을 다져두는 그지만 때로 공연을 앞두고 몸이 좋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는? 이 악물고 악으로 버틴다고.

 

무대에 설 때는 공연이 무사히 끝나는 데만 집중한다. 그래서 생활은 더 없이 단조로운 편.
“밍밍한 게 재미없는 생활인데요, 그게 제 직업인걸요, 뭐.”

 

심드렁하게 말하는 그지만 자신의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목소리와 최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도록 평소에 몸을 만들어둬야 한다는 그의 말에는 역시, 이은미다운 강단이 묻어난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의사가 돼주세요

 

30대 후반이 되면서 몸 상태가 안 좋아져 요즘은 염분을 최대한 낮춘 식사로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 30대 중반쯤에는 우울증도 있었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 음악을 그만둘 생각도 했었다고. 하지만 그가 말하듯이 자신을 이 자리까지 끌어준 것은 오로지 무대에서 만나는 관객들이었고 이번 음반은 그들이 좋아하는 발라드 음악으로 채웠다. 일종의 팬 서비스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음반에 대한 반응은 어느 때보다 빠르고 뜨겁다. 기존 이은미의 음악들이 발표된 후 2~3년 후부터 인기를 끄는 것에 비하면 참 색다른 경험이라고.

 

공연을 통해 격렬한 감정을 겪어야 하는 탓에 그는 우울증 등 ‘마음이 아픈’ 환자들에게 의사들이 특히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시스템이 변해서 의사들이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마련됐으면 좋겠고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가 아니라 관리를 위해 의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고.

 

“친구 같은 의사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은 의사들이 더 바라는 바이긴 하지만 막상 그때가 다가오면 팍팍한 세상에 시달린 나머지 환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감성이 메마를지도 모르는 일, 슬픈 발라드, 흥겨운 댄스 등 다양한 음악으로 환자들과 감성의 높이를 맞춰두는 것이 오늘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