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책읽는 경향, 달러
ㆍ세계 동시 불황의 뿌리 ‘사악한 화폐놀음’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친구에게 점심을 하자고 연락했더니 북한산에 있다고 한다. 지난달부터 실업대열에 합류해 매일 등산을 다닌다는 것이다. 실업자 100만, 경제성장률 -4%라는 경제지표가 실감 안 나더니 갑자기 머릿속에 경광등이 켜졌다. 올해 경제주름은 10년 전 IMF보다 더 골이 깊다고 한다. 이 불황의 늪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디까지 계속될까. 미국발 불행 앞에 망연자실하다 정신을 차리고 ‘근원’을 곰씹어 본다.
미국 경제전문변호사 엘렌 H. 브라운의 <달러>(이재황 역/AK출판사)는 세계불황의 뿌리를 사악한 달러에서 찾는다.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돼 우리가 겪고 있는 환율불안, 경기침체, 이로 인한 감원과 파산으로 이어지는 금융위기 쓰나미 본질이 널뛰기를 거듭하는 달러가격이라는 것이다. 그럼 왜 달러가 내 삶을 지배하고 우리 국민의 목을 옥죄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 월스트리트의 거대은행들이 출자해 탄생한 민간 연방중앙은행(FRB)이 미 정부의 통제력에서 벗어나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내면서 미 국민은 물론 세계인을 이들이 찍어낸 달러의 거품위에 올라앉게 했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그렇다면 국제은행가들이 왜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가. 각국의 정치시스템과 세계경제를 지배할 수 있는 통제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미 정부는 결국 꼭두각시가 됐고 금융기반이 약한 국가를 골라 하나둘 자신의 지배하에 둔다. 10년 전 한국이 금융위기에 시달리다 결국 두 손을 들고 IMF 구제금융을 받은 것도 이들의 길들이기라고 책은 금융음모론을 제기한다.
빚더미 거미줄에 매달린 사람들이 2009년 3월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일까. 이 책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월가의 주가와 환율변동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사악한 화폐놀음이 중단되기 위해서는 미 정부가 FRB로부터 통화발행권을 빼앗아 직접 화폐를 발행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결혼 준비를 위해 펀드에 가입했다가 쪽박을 차게 된 조카는 요즘 눈물 젖은 소주잔을 기울인다고 들었다. 사악한 달러에 맞서 우리 정부가 조금이라도 그녀의 눈물을 씻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입력 : 2009-03-23 18:22:11ㅣ수정 : 2009-03-23 18: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