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세계의 지붕 위 ‘仁術 Korea’


푸르메재단 나눔치과 봉사대로 해발 3450m의 네팔 남체바자르를 찾은 치과의사 이금숙 씨가 여덟 살 난 어린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남체바자르=신광영 기자

 

 

 

 

 

 

 

 

 

 

 

 

 

푸르메재단 나눔치과 네팔 고산마을서 봉사... 주민 180명 치료

해발 3450m의 고산마을인 네팔 남체바자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로 가는 관문이다. 지난달 25일 통나무집인 ‘로지’를 빌려 마련한 간이 치료소에 '할머니' 로상 씨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섰다. 그는 “티베트에서 4일을 걸어왔다”고 했다.

허리가 굽어 침대에 똑바로 눕지도 못한 채 그는 푸르메재단의 이동준 나눔치과 부원장에게 오른쪽 윗어금니를 가리켰다. 티베트어-네팔어-영어-한국어로 이어지는 통역을 하기 위해 세 명이 달라붙은 끝에 “10년 동안 나를 괴롭히던 이인데 제발 빼 달라”는 뜻이 전달됐다.

잇몸에 고름이 가득해 당장 빼야했지만 그 이는 오른쪽 잇몸에 남은 마지막 치아. 그게 없으면 음식을 씹기가 어려웠다. 환자의 간곡한 표정에 이 원장은 이를 뽑기로 했다.

난생 처음 치과 치료를 해보는 할머니는 ‘윙윙’ 하는 치과용 기계음이 들리자 몸을 벌벌 떨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머지는 두 팔을 붙든 채 10여 분의 사투를 벌인 끝에 결국 이를 빼냈다. 할머니의 촘촘한 눈주름 사이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입에 솜을 물고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는 의료진에게 정중히 합장을 한 뒤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진료기록을 들여다보니 70대로 보였던 로상 씨는 마흔셋의 중년 부인이었다. 그가 감사의 뜻으로 남긴 메모에는 “이 녀석을 빼낸 건 나한테 기적 같은 일”이라고 씌어 있었다.

히말라야의 기적을 이룬 주인공들은 푸르메재단 나눔치과 자원봉사단. 이들은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통솔하에 2박 3일을 걸어 3450m 높이의 남체바자르에 도착했다. 혹독한 고산병과 싸워야 하는 이 오지에서 각종 장비와 진료도구가 필요한 치과봉사를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이날 오전 9시부터 10시간 넘게 진행된 봉사진료에는 280여 명이 찾아와 이 가운데 180명이 치료를 받았다. 남체바자르뿐 아니라 인근 팡보체와 루크라, 심지어 티베트에서도 환자가 몰려왔다.

4명의 치과의사들은 평소 환자의 4∼5배를 소화했다. 이를 뽑던 중 손에 쥐가 나 치료가 중단되기도 했다. 여기에 31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묵묵히 힘을 보탠 덕분에 열악한 치료 여건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일부는 하루 종일 침대 옆에서 손전등을 들고 서서 환자의 입을 비췄고 한쪽에선 손수 치과용 보형물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남체바자르=신광영 기자 neo@donga.com